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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탈레반 사태, 과연 교회만의 책임인가


탈레반 피랍사태가 종결되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던 샘물 교회 봉사단들은 정부의 제제에도 불구하고 선교활동을 강행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피랍된 그 순간부터 한국으로 돌아 온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과 언론은 교회의 공격적인 선교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며 피랍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의 궁극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정부의 침략적 정책 파병이 궁극적 원인

탈레반이 처음으로 한국 정부에게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군의 철군이었다. 또한 석방합의의 핵심적인 내용 역시 한국군의 철군이었다. 우리나라 정부는 침략적 전쟁에 동참하며 아프간에 한국군을 파병했다. 한국군이 아프간에서 평화적인 활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파병의 목적은 미국의 대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침략적인 정책이 무고한 생명을 둘씩이나 잃게 만들었다.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는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미국과 미국에 충성스런 아프간 정부만 믿다가 소중한 두 명의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군이 테러집단과 협상한 것에 대해 국제 사회가 맹비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파병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미국과 독일이 철군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탈리아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탈리아 국민이 피랍됐을 때 이탈리아 정부는 당당히 탈레반과 협상을 했다. 외국 보수 언론의 목소리를 국제 사회의 여론이라고 일반화 시키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있다.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피랍사태의 궁극적인 원인은 노무현 정부의 파병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언론의 기능 제대로 못하는 번역 저널리즘

한편, 이번 사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일단 우리나라 외신 보도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피랍자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랍자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외신보도를 번역한 기사일 뿐이었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알자지라의 기사를 한줄, 한줄 번역하기까지 했다. 언론이 취재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정부에서 아프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철수하라고 했기 때문에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아프간 쪽에 파견되어있던 언론인들은 애초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김모 PD님이 아프간에 갔을 때 탈레반이 이미 설치고 있었다는데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만약 우리나라 언론이 탈레반이 활개를 치고 있는 아프간의 상황을 보도했더라면 샘물 교회 봉사단이 그 위험한 버스를 타고 아프간을 돌아다니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무지한 협상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정보력, 외교력의 부재로 초반에 아프간 정부만 덥석 믿고 거짓 정보에 속기만 했다. 협상 시한이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정부는 곧 이어 배형규 목사, 심성민씨의 살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더욱이 국정원 자체에도 해외 파트가 작은데 이 중에 아프간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존재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파슈툰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랍어 교수를 현지에 파견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정부가 얼마나 아프간에 무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제반 비용을 피랍자와 샘물 교회 측에 청구한다고 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그 비용을 국민에게 청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반의 잘못된 대응으로 두 명의 생명을 구해내지 못한 것을 사죄하고 하루 빨리 이라크, 레바논의 한국군 역시 철군해야 할 것이다.

철군을 하면 국가의 위신이 떨어지고 국익에 반대되는 일이라고들 하던데, 과연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궁금하다. 덮어놓고 민족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국익을 위해서라고 떠드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파병군대를 철수하는 것과 침략 전쟁을 지지하면서 테러 집단의 공격을 받는 것 가운데 어떤 일이 국민을 위하는 일인지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이경민 기자(yikmin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