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내 청춘에게 고함!!

  대학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수능이 끝나 대학에 입학해서 이성친구도 사귀어 보고 싶고 한 번 즈음 꼭 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삶의 시계바늘을 쫓아가기 바쁘다. 글로벌 시대에 HERO가 되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보람과 희열을 느끼는 그런 것들을, 앞으로 다시 돌아오질 않을 대학생의 생애에 단 한번만이라도 하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학생 CEO로 창업하는 성공기나 광고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단하긴 해도 나에 착 달라붙는 옷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일 뿐. 예쁘고 잘생겨서 잡지의 모델들도 보기는 좋지만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얼마 전, 1학년 때부터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가 알고 보니 매달 한 번 마다 달동네의 아이들을 찾아 그 애들의 선생이자 친구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다.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꿈을 그 녀석은 나 몰래(?) 하고 있더란다.

  같이 공부하고 놀고 미팅하던 그 친구가 말이다.



여기 나와 같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반딧불들이의 따뜻한 겨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로야학을 시작으로 40년 째 이어져 오고 있는 동아리가 있다. ‘고려대학교 운화회’. 종로야학에서 출발한 운화회는 4년 전부터 공부방을 하고 있다. 강북 번동에 위치한 반디공부방에서 이제 곧 있으면 후배를 맞게 될 이송희 씨(고려대 영문과 1학년)를 만났다. 그녀는 제 나이답지 않게 제법 어른스럽다. 차분하고 정돈된 말투도 그렇고 ‘애들이 너무 예쁘다’며 칭찬 할 때는 그 눈빛이 풋풋한 교생 선생님을 닮아 있기도 했다.

  공부방 쉬는 시간은 정말 미친 듯 산만하다. 어디선가 'Tell me' 노래가 들려오더니, 애들이 선생님에게 “춤 춰 보세요” 라며 짓궂게 달려든다. 아이들에게 쫓겨 교무실로 임시 후퇴한 선생님. “애들이 요즘 저를 좀 맞먹어요.” 라고 얘기는 하는데, 싫은 기색이 전혀 없다.


공부방은 어떻게 운영되는 거에요?
  이곳 7명의 선생님은 모두 대학 1학년이에요. 여기가 1학년 1학기는 세미나도 하면서 연수과정을 마쳐요. 그리고 여름방학 때부터 2학년 1학기까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 처음 만난 건 올 8월부터죠. 일주일에 2번씩 나오는 게 다가 아니고, 이것 말고 회의까지 포함하면 시간을 꽤 투자하게 되죠. 그래도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옛날 선배들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쭉 야학에서 수업 하셨는데, 이제는 솔직히 4학년까지 활동하기엔 좀 무리가 있죠. 아시다시피 그 땐 취업 걱정이 별로 없었잖아요. 지금은 어쩔 수 없죠 뭐.

아이들 보니까 어땠어요?
  처음에 애들 표정은 그냥 얼어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아무래도 애들이 어리다 보니 쉽게 친해진 것 같아요. 처음엔 중 1짜리 애들 뭐가 예쁠까 했는데, 정말 너무 예뻐요. 근데 숙제 잘 안 해오거나 시험 결과가 안 좋거나, 시험 치고 왔는데 다 찍었다고 말하거나 할 땐 좀 열 받죠 (웃음).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래도 아이들이 여기가 다른 학원 같은 곳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말해요. 선생님과도 많이 친해질 수 있고. 제가 생각해도 여기가 학교 교육의 틀에서 많이 벗어난 건 아니지만 다른 데보다 훨씬 자유롭단 생각을 해요. 애들이랑 얘기해 보면 정말 상상력이 장난이 아니에요.

솔직히, 자기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공부방을 계속 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 원래 있던 친구들 중 절반은 빠져나갔어요. 힘들기도 하고, 선배님들이 “너희가 애들한테 봉사한단 생각으로 이거 한다고 하지만, 애들로부터 보답하길 바라는 건 기대하지마라. 현실과 이상은 다른 거다” 뭐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셨거든요. 사실,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버티기 힘들어요. 우리가 애들한테 뭐 주는 만큼 애들한테 뭘 받는다는 생각도 버리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어떤 봉사 단체에서 한 달에 한두 번 시설 같은 데 가서 봉사 해주고 집에 돌아오면 ‘아 나 오늘 봉사해서 참 보람되고 뿌듯하다’란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여긴 좀 달라요. 이게 아예 일상이 되어버리니까. 여기 온 아이들도 그냥 평범해요. 가정 형편 어렵다는 것도 사실 별로 인식 못하고, 무료로 공부 가르쳐주니 고맙다는 생각도 잘 안 해요. 그리고 우리도 그게 더 좋고요.

  우리가 대학생으로서 아이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만난 중요한 사람들은 기억에 많이 남잖아요. 저희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거리에서 열정을 만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5년간 개최되어 온 '홍대 앞 거리미술전'(이하 거미전) 활동을 1학년 때부터 4년간 해온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4학년 임나래씨(여,24세)를 만났다. 영상 전시를 보러 갔었을 때 전체적인 구성과 작품이 내실 있어서 학생들이 주관하는 행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주로 젊은 아마추어 작가들이고 영상 작품의 경우에도 학생들의 작품들이 많아서 신선하고 재기발랄했다.

  거미전이 야외에서 진행되다 보니, 날씨와 관련된 어려움이 가장 큽니다. 제가 전시팀장을 했던 2005년도에는 3일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기획단 모두가 비옷에 청테이프를 감아가면서 작품이 젖을까봐 이리저리 작품을 나르고, 비가 그치면 다시 전시하고 하는 일을 반복했어요. 또 아무래도 '홍대'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취객과의 시비가 왕왕있기도 하고 간혹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가기도 한답니다.

'거미전’은 누가 개최하는 것인가요?‘
  시작이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들이었지만, 지금은 '거미전 기획단' 이란 이름으로  홍대 미대생이 약 70% 그 외에는 홍대 타 단대나 타대(연대, 이대, 서울여대, 건대 등) 학부생들, 간혹 일반인이나 대학원분들도 있어요. 구성원은 다양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작가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소통 매체인 예술과 ‘거미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기획단 모두의 공통점입니다. 총 준비기간을 포함하여 10개월 정도 되니까 거의 한해를 거리전과 함께 하게 되는 거죠.

4년간 ‘거미전’ 활동을 하셨으면 기억에 남는 일들도 많으실텐데.
  기획단원들이 ‘거미전’을 준비하는 10개월 동안, ‘정말 좋았다’ ‘재미있었다’ ‘또 하고싶다’ 라는 말과 함께 작가들과 외부 분들이 격려를 해주실 때 보람을 느껴요.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거미전’의 목적이 미술과 대중과의 소통인 만큼, 거리에서의 전시 벽화 영상 공연 워크샵 참여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작가와 대중이 만나고, 이를 통해 관객과 작가가 마음에 담아가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행사 후에도 벽화 등을 통해 홍대 앞 곳곳에 남아있는 ‘거미전’의 흔적을 볼 때 감동을 느낀답니다.

  주위의 친구들과 조금은 다른 활동을 했다는 것이 걱정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거미전’ 활동을 하면서 얻은 '추억'과 '경험' 때문에 지금의 제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코라예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터뷰한 코라멤버들,왼쪽부터 민수,형종,지안,장호


 
'KORA'는 국민대학교 자작 자동차 연구회다. 자작차는 아마추어 대학생들이 직접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하고 제작하는 차량이다. 전체 회원이 3,40명이고. 대회 때마다 팀 구성이 돼서 출전하는데, 팀 인원은 15명이다. “대학생들이 나오는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부차적이고 주목적은 우리 내부적으로 자동차학부라는 전공을 안에서 실제로 제작이론을 차량에 적용해봄으로써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KORA'의 존재 이유라 말한다.

  성취감이 참 커요. 저희는 차 만들 때 고생을 참 많이 해요. 휴학을 안 하면 못 만들 정도로 시간이 안 나거든요. 공부까지 못하니까 학점 떨어지고 메울 생각하니까 휴학해요. 집에서도 많이 반대하는데, 차라리 학생 때 한 번해보자. 나 하고 싶은 거 한번 미치도록 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매달리는 거죠. 저희는 진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자기가 뭔가를 만들어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죠.

지난 5월, ‘2007 F-SAE대회’(세계 대학생 자작차 대회)에서 13위를 차지했다고 하던데
 
  F-SAF 대회의 목적이 대학생들이 자동차를 설계하는데 공학적으로 차량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그냥 차를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떤 이론에 어떤 설계를 갖췄으며 설계가 어떤 해석을 통해서 이 설계가 타당한지를 입증하는 거죠. 작년에 미국에 출전했을 때는 고생도 올해보다 두 배로 많이 했는데 운이 없어서 결과가 안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실망을 많이 했고, 다음에 또 나가면 더 잘해보겠다 했죠. 그래도 다시 막상하려니까 너무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었어요. 근데 팀원들도 있고 하면 같이 하는 거니까 그래서 같이 갈 수 있었죠. 그런 마음으로 차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13등까지 했고, 저희도 이런 결과에 놀랐죠. 세계 학생들은 듣고 보도 못한 나라에서 이렇게 성적이 잘나오니까 신기하다면서 우리 차를 구경할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학점이나 미래에 대해 걱정 안 되세요?
  학생들이 되게 미래에 대해서 생각 많이 하잖아요 저도 1학년 때 되게 생각 많이 했어요. 그래서 처음 지원하게 된 동기는 솔직히 말하면 ‘이력서에 이런 거 한줄 써주면 괜찮겠다’해서 들어왔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처음엔 되게 힘들더라고요. 학점 챙기기도 힘들어서 그만둘까 생각도 했는데 계속 하다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성과물을 어떻게든 챙겨보자 해서 코라 시작했는데, 하다보니까 자동차가 좋아지게 된 케이스죠. 저는 자동차보다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형들이 친동생처럼 챙겨줬어요 아무래도 밤샘작업을 같이 했으니까 가족처럼 돼요. 이제 “이거 하면서 (경력 같은 것)얻어 가겠다” 하는 생각은 1학년 1학기 때 접었습니다.(웃음) 이런 거 자체가 얻는 것 같아요. 사람들 얻어가고 좋은 추억 얻고, 이게 좋아서 하는 거죠.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나 팀으로나 성공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는 성공이란 게 준비하면서 느끼는 설레임이나 부담감, 마지막에 평가받기 전에 긴장감, 그 정도? 그런 거 느낄 수 있는 게 성공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번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좋겠어요.

  싸이에 ‘코라’클럽이 있다. 내가 거기 들어가서 사진을 퍼가도 되냐니까. “그럼요. 그러면서 퍼가실 땐 퍼가요~♡ 하나 남겨주고 가시면 돼요” 라고 말한다. “기자님 홈피 조회 수 엄청 높아질 거예요. 공대는 워낙 여자가 없어서 여자이름 있으면 누군가하고 다 들어가 볼 거라고”(웃음) 개구쟁이 같은 그들의 꿈에 박수를 보낸다.


길고양이의 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재경(서울대 정치학과 05학번) 씨는 언뜻 보면 대단히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이 친구를 아는 사람들은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평한다. 좀은 엉뚱하고 인터뷰 하는 내내 나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해 당혹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2 때부터 계속 해왔던 습작의 과정 속에서 나름의 문학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최근 그는 ‘길고양이 보고서’라는 제목의 시로 서울대 대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정말 가치를 찾는 시대라면 그리고 정말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면 삶의 모습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글들에도 시선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 시를 쓰냐는 것에 사실 딱히 대답은 없네요. 시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와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작품 제목이 ‘길고양이 보고서’ 인데, 간략하게 작품 소개 해주세요.
  어느 날 문뜩 학교 주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비가 오는 날에 물을 바라보는 길고양이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보면 가야할 앞이 정해져 있지만, 가고자 하는 의지나 의식이 없다면 다른 공간과 다름없는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우리는 길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막막해하며 길을 찾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도에서 나온 시가 ‘길고양이 보고서’입니다.

시 쓸 때, 행복하시나요?
  묘한 기분입니다. 리포트처럼 써야하는 글을 쓸 때와는 정말 다른 기분이다. 흙으로 작품을 빚듯, 시도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글을 짜나가는 방식으로 씁니다. 시는 시를 보는 사람과 교감하는 장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보여 주었을 때, 독자는 그 시를 지은 사람과 같은 감정이 되어야 공유가 됩니다. 저저와 독자의 틈을 극복하고 자신의 시로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것을 기대하는 것도 재밌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누구에게 보여주었을 때의 어떤 기대감 등이 시를 쓰는 행복감에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쓰는 글하고 똑같은 글을 다른 사람이 쓸 수 없다는 점에 굉장한 매력을 느낍니다. 어떠한 글을 남기더라도 유일한 것이 된다는 점은 정말 큰 매력이더라고요.
     

나의 길을 가고 싶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밤이면 일기장에 푸른 잉크로 살아온 날의 숫자만큼, 사랑이라는 단어를 채워넣고 눈시울이 젖은 채로 죽고 싶더라, 눈시울이 젖은 채로 죽고 싶더라,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
 -이외수의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살에는 中에서

  2007년 12월, 나를 두고 취업난의 88만원세대라고 하고, 아직도 대학가를 배회하고 있는 어린애라고도 한다. 내 나이 이제 20대 중반이건만 마흔이 넘은 것처럼 대학 새내기 때 가졌던 꿈들을 회상하는 나를 발견하곤 이내 피식 웃음이 난다.

  이들의 삶을 바라보며 대학 4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이제야 스무 살의 일대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세 번의 연애와 14번의 시험, 셀 수 없을 만큼 친구들과 울고 웃던 기억들이 영화 속 잘려나간 키스신 장면들의 모음집처럼 떠오른다. 스무 살을 열정으로 불태우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심의에 의해 잘려버린 나의 생애를 다시 붙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한다. 블로거 기자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시선을 훔칠 수 있는 도둑 심보로 말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 아닐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