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도, 20대도, 뜨겁다!
지난 6월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쏟아져 나온 100만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고, 연이어 국민대책위는 “정부가 미국과의 전면 재협상을 하지 않는 이상 촛불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불평’, ‘불만’을 넘어버린 국민들의 ‘분노’는 거리에서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학문의 상아탑이 아닌, 상업화에 기반한 취업준비학원으로 변해버린 대학가의 학생들도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거리로 뛰쳐 나왔다. 그들은 끝까지 평화시위를 사수하며 새벽을 맞았고, 그 과정에서 수 명이 부상, 수 십 명이 연행 되기도 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씨가 “20대는 ‘광장’을 사용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말했지만 2008년 6월, 거리에서 만난 20대들은 확연히 다른, 혹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특히 각 학교의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나온 학생들보다, 삼삼오오 무리를 짓거나 혼자 촛불을 들고 나온 20대들이 집회 구성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정치적 회의주의와, 고정관념 속에 갇혀있던 ‘20대’
서울에만 70만 명이 모였다는 지난 10일, ON20는 ‘광우병쇠고기 수입사태’로 처음 집회를 찾았다는 대학생들을 직접 만나봤다. 친구들과 함께 거리에 나온 건국대 이씨(23)는 “그 동안은 나에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니라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대학생들이 사회적 문제에 임해왔던 소극적인 모습에 동의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서씨(26)는 “사회 문제들을 외면해왔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권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는데 이는 그 동안 거리로 나오지 않았던 20대 다수가 “집회에 나가도 특별히 변할게 없을 것”이라고 말하던 회의적인 목소리와도 일맥상통하다.
이렇게 20대들을 지배하는 정치적 회의주의는 ‘정치’라는 말 자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실제,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정치’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대학생 김씨(22)는 “정치는 늘 근거 없는 비판이 난무하고 사건의 본질에서 어긋나는 얘기만 할 뿐, 자기들 ‘이익 챙기기’만 급급하다”며 정치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20대는 정치를 “어른들의 일” “거짓말” “이념싸움” “싸우기만 하고 정책연구는 없는” “부르주아만을 위한” 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들을 갖고 있었다. 이는 20대가 ‘정치적 회의주의’와 함께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그들만의 권력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들이 고치 돼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20대는 언론을 통해서만 목격했던 ‘정치’(어찌 보면 ‘국회’)의 고정관념 속에 각자의 목소리들을 가둬 왔던 것 같다. 일부 학생들은 실제 “지금 자신의 집회 참여가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다.
“촛불에서 ‘희망’을, 현장에서 ‘진실’을 찾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20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에 대한 회의 속에서도 지금의 상황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치, 사회적 문제가 더 이상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닌,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대입준비생 정씨(22)는 “옛날엔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치가 나와 너무 가까운 공기” 같다며 “여태껏 20대들이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외면해왔지만, 이제 우리가 바꿔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 정부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에도, 20대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정씨는 “싸우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이길 것이며 대통령은 바꿀 수 있지만, 국민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앞으로의 변화를 확신했다. 뿐 만 아니라 그들은 주변 친구들이 예전보다 사회 문제에 더 적극적이로,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국민대 재학중인 한 학생은 “행여, 이번 일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이것을 계기로 국민들이 분명 ‘각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 23세의 한 학생은 “얼마 전, 촛불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몇 몇 언론이 시민들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오늘의 집회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20대들은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언론을 통해서만 봐왔던 사회적 문제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데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이고 객관적판단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조중동’을 비롯해 어떤 언론이든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통해 확실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바란다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20대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먼저, 국민을 섬기지 않는 아마추어 정부가 지난 100일 동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배웠고, 20대들의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도 그런 사회를 더욱 후퇴하게끔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20대의 자유분방한 표현의 자유가 유독 ‘정치’적 사안에 있어서만은 예외의 것이 되어 왔다. 20대들은 국민들의 함성이 지금의 상황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는 100%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참가한 한 학생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는 '변화에 대한 희망'을 확신하기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라는... 그녀의 말처럼 2008년, 20대가 정치적 회의주의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당당하게 그들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ON20 기자 문하나
ON20 인턴 기자 윤혜진
ON 20 인턴 기자 강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