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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007 범국민 행동의 날

모두가 울어야 했던 11일, 광기어린 광화문 거리(영상)






오후 네 시 반, 광화문 거리는 싸늘하기만 했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그들을 막아선 버스를 장악하고 있었고, 이에 질 세라 그들 자식만한 나이의 어린 전경들도 방패와 진압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십 분 후 민중들 틈에 섞인 필자는 8차선 길을 막아선 버스 위로 기계 호수가 뿌려대는 물을 맞고 있었다. 최저기온 5도에, 그 중에는 지방에서 오려는 농민들을 막아선 전경들 때문에 몇 시간을 서울로 걸어올라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끼어있었다.

버스 위에 올라선 사람들은 거센 물살로 인해 넘어지고 뒹굴었다.

햇살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여기가 내가 매일 걸어다니던 그 길이 맞는건지. 이 사람들은 무엇을 향해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 건지. 얼마 전 영화관에서 본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냥 그 현장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넋 놓고 그 차가운 거리 위에 서 있던 나는, 순간 사람들이 내 쪽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빨리가, 빨리 뛰어" 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섞여서 뛰기 시작했다. 사실, 뛰는 것이 아니라 뒤엉켜서 휩쓸려 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맨 뒤로 뒤쳐졌고, 그 때부터 전경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씨발 놈들아, 다 죽었어"

건물 쪽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따라 나는 몸을 움직였다. 전경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어왔고, 농민과 노동자들은 전경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다녔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다시 이방인이 되었지만, 카메라를 무기 삼아 다시 중앙으로 걸어들어갔다. 흩어진 친구들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눈에 보이는 건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광기어린 전경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전경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들도 어쩌면 또 하나의 피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왜 그들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 왜 자신이 봉을 휘두르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맨 정신으로 힘 없는 약자들을 봉으로 가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피흘리고, 울부짖는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에게 분노해야 하는가.

결국, 이 분노는 시위를 '불법'이라는 어이 없는 이름으로 막아버린 정부에게 향해야 한다.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고, 전경들을 내세워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을 가격한 노무현 정부에게 말이다.

11일 거리에서 만난 민중과 전경들. 이들이 왜 그렇게 서로를 잡아 먹지 못해 악을 썼는지 모르겠다. 전경들은 결국 이 정부의 줄달린 나무인형에 불과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치라면 쳐야하고, 죽이라면 죽이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공권력의 힘이란 무서운 거였다.

'미친 세상. 광기어린 세상'

이것이 어제 내가 그 현장에서 느낀 것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말이다.

어제의 그 유혈 사태가 있은 후 오늘, 다시 세상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라는 식으로 여유롭고 조용하다. 지나칠 정도로 평화롭다. 어제의 일이 모두 꿈인 것같다. 박근혜가 이명박의 편을 들어젔다느니, bbk가 어쨌다느니, 정동영과 이인제가 합쳤다느니 ...

그들은 또 한 번 죽어간다. 어제의 사태가 밥상머리에서나 몇 마디 주고 받고 끝낼 일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세상은 모두 침묵하는가.

불법시위?

민주주의라는 국가에서 배움에 목말라 하고, 겨울마다 추위에 떨어야 했던,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에 울어야 했던 이 나라의 어려운 민중들이 서울 한 복판으로 몰려들었다. 따뜻한 관심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시민들의 이 잔인한 질책을 받을만한 일인가.

교통 혼잡? 전경들 피해? 시끄러웠다고?

도대체가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일들은 마치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더 무심하고, 냉소적이다.

가끔, 우리나라가 참 뜨겁다는 생각을 한다. 월드컵 때도 그렇고, 신정아 사건 때도 그랬다. 참 잘 달아오른다.

어제의 일은 어쩌면, 먼 훗날 우리가 또 한 번 되새겨야 할 지도 모르는 의미있는 날이었다.
365일 중 단 하루도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이, 단 하루만,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다며 저 먼 제주도에서부터 새벽부터 올라왔다.

나는 지금 너무 마음이 아프다. 어제 내 눈에 각인되었던 그 광기어린 눈빛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농민이든, 노동자든, 전경이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어제 내가 본 대한 민국의 민주주의는 단 1mm의 세포막으로 둘러쌓여진 허물에 불과했다.

적어도 스물 두살의 내가 바라본 어제의 서울은 칠흑처럼 어두운 전쟁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놔 기자 cochon8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