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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마 내 손으로 내 상처를 꿰매야 하는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아마 내 손으로 내 상처를 꿰매야 하는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최근 마이클 무어 의 신작 ‘sicko' 의 첫 장면의 시작은 이렇다.
무릎을 다친 한 미국인이 슈퍼에서 의료 기구를 직접 사와 자신의 무릎을 꿰맨다. 왜 일까.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이 비싼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직접 치료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손가락 두 개가 잘린 사람이 치료비가 너무 비싸 한 손가락만 붙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최첨단 의료기구로 인간들의 장밋빛 건강생활을 보장할 듯한 미국이 정작 건강보험료를 받지 못하는 서민이 천만 명이며, 민간업체의 의료시장 잠식으로 건강을 자본과 바꿔치기 하는 어이없는 사건을 고발하고 있다.
FTA가 체결되면 미국 의료체제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돈 없으면
내 손으로 내 상처를 꿰매야 하는 일이 발생하진 않을 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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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 감독 최근 영화, sicko(아픈사람) @네이버


가난한 사람은 아파도 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마이클 무어가 질책하는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럼 일단, 이것부터 생각해보자.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돈이 세상에서 최고야” “아니야” “돈 있으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세상이야”
“말도 안돼” “아는 친척이 교통사고를 나서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응급실 구석 침대에 그냥 내버려 두더란다. 속이 타는 부모가 급하게 3천만원을 빌려서 의사한테 몰래 쥐어줬더니 대번에 가서 있는 방법 없는 방법 다 동원해 환자를 치료했단다. 이런 세상이야” 
그 이야기에 난 가슴이 메어 울어버렸다.


이런 세상인가? 대한민국이?


빈곤이 병을 낳고 또 병은 빈곤을 낳는다. 여기에 사회의 냉혹한 인식까지 더해졌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에서는 의료수급권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예산 낭비가 심하다며
그들에 대한 본인부담금제가 도입하겠다고 했다. 가난하면서 눈치 없이 공짜로 파스
도 많이 쓴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27일 보건복지부는 차상위 계층에 제공되던 의료급여 혜택을 단계적으
로 폐지하고 이들을 건강보험 가입자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차상위 계층은 소득이
최저생계비기준을 약간 넘거나 소득이 최저생계비 기준이하라 해도 자녀 등 부양의
무자가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못한 준빈곤층을 말한다.
그나마 의료급여의 혜택을 받고 있던 차상위 계층에게 이제부터 그 혜택마저 빼앗아
간다면 그들의 사회적 안정망은 사라지고, 추락했을 경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
능성이 높다. 오히려 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차상위 계층이다.


내 말이 이상적이라 생각하지 말고, 정말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보자.


아플 때 돈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말이 되나? 물론 돈이 넉넉한 사람들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든지 나와 내 가족이 아플 수 있고
만약 큰 병을 얻게 되면 그 병원비 때문에 쉽게 가난해 지는 경우는 빈번하다.

아니다, 꼭 내가 아파지거나 가난해지는 경우를 가정해야만 우리의 건강권에 대한 의
식이 높아지는 것일까. 그것은 언제든지 '내 상황이 아니니까 아직은 관심없어'라는
핑계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번에 차상위 계층이 건강보험 대상으로 전환하면서 전체적인 건강보험료도 단계적
으로 상승하게 됐다. 이유인 즉, 재정난이다. 그래서 “정부가 재정으로 충당하던 저소
득층의 의료급여 지출 부담이 건강보험으로 통합되고,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저소득
층 의료급여 부담을 떠안게 됐다”. ‘떠안게 됐다’고 한다. 이것은 한 기사를 발췌한 것
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떠안게 됐다고 말한다. 이럴 때 기존의 건강보험대상자들
은 ‘나는 지금 아프지도 않은데, 매달 꼬박 건강보험료를 내면서 저소득층에 내 세금
을 부어야 하는가’ 라는 불평을 내비치게 되기도 한다.

이 문제는 내 세금의 일부가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이는 것을 당연
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필요한 것이 우선이지만, 그 배후에서 우리의 건강권을 지켜주
어야 할 국가가 뒷짐 지고 국민들에게 책임과 부담을 다 떠넘기고 있다는 걸 잊지 말
아야 한다.

우리의 건강권이 여유가 되어야 재정을 끌어다 써주는 영역에 불과한 것인가.
이상적인걸까. 적어도 돈때문에 내 몸 아플까 걱정하지 않게 되는 날에 대한 기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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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이 나도 돈 걱정하지 않는 나라,,,? @네이버



국가는 해야 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초부터 바로 세우고 정책을 발의하고
집행해야 할 일이다. ‘인권’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보장
받아야 할 권리조차 자본의 변덕에 제약받는다면 우리들은 왜 기술을 발전시켰는가.
왜 의료기술과 제약기술을 자꾸만 발전시키고 있는가.  약은 상품이 아님에도 불구하
고 구매 능력이 없는 곳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은 개발되지 않는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는 말라리아, 결핵 등이 심각하지만 돈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약
은 개발되지 않고 있다. 이게 과연 상식적인 상황인가. 건강을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
이.


영화 sicko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돈이 부담돼 자기 병명이 뭔지 제대로 검사 한번
못받던 미국인이 쿠바에서 아무런 부담 없이 검사를 받고, 자기 나라에서는 너무 비
싸 제대로 챙겨먹지도 못했던 약이 쿠바에서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것을 보고 기가막혀 울먹이는 여인의 모습. 
'현실적 제약이 있다. 그런 구조가 못된다.' 라고 핑계대지 말자. 이 지구상에서 분명
돈 걱정하지 않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그 곳은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뛰어나지도 않다.


우리 나라에서 무상의료는 현실적 제약이 있고, 그런 구조가 못될까.



오산이 기자(ymj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