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진재 84주기 기념행사 전시사진
1923년의‘불령선인’, 그 넋을 위로하며...
간토대진재 84주기 재일조선인 학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행사 심포지엄을 다녀와서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에서는 크기 7.9의 대지진과 함께 불구덩이가 된 일본 열도 속에서, 재일조선인 대학살이라는 집단적 연쇄살인이 자행되었다 . 그리고 혼란에 빠진 일본 열도는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재일조선인을 대지진의 재앙보다 더욱 잔혹한 악마들로 재탄생시는데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불령선인 각처에 방화”“선인 도처에서 난도질 ”
“선인으로 인해 도쿄는 저주의 세계”
재일조선인들이 지진의 혼란을 틈 타 불을 지르고,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우물에 독극물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지방신문을 통해 확산되었다. 이러한 오인정보에 격분한 일본 시민들은 조선인 폭동진압을 위해 만들어진 자경단과 결합하여 ‘조선인 사냥’에 뛰어든다. 후에, 일본 정부는 행간에 떠돌고 있는 조선인 폭동이 유언비어임을 알게 되었으나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1923년, 화염에 휩싸인 일본 열도. 그 속에서 마주한 일본인과 재일 조선인.
그들의 모습이 상상이 가는가.
일본을 더 깊은 재앙 속으로 몰고 가려는 '불령선인'의 잔인함과
조선인이라면 닥치는대로 총, 칼을 들고 달려드는 일본인의 광기어린 분노.
중요한 건 일본인들의 조선인 학살도 모두 위협과 공포에 기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포지엄 중, 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끔 관동대지진 대학살 때, 재일조선인들을 학살했던 일본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일본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쓰고 있는데, 그들은 저를 볼 때 마다 이렇게 두 손을 모으고 얘기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말이죠.”
필자는 여기서 대학살을 자행했던 일본의 경찰들, 그리고 그들과 합세하여 우리 조선인들을 무참하게 살해하였던 그 당시의 일본인들을 앞선 시대적 사명을 갖고 용서하려는 생각은 아직 없다. 다만 피 비릿내 진동하던 일본, 그 광기어린 열도 안에서 피해자는 비단 재일조선인들 뿐이라고 할수 있는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심포지엄의 야마다 쇼지(전 릿교대학 교수)씨는 일본 민중의 조선인학살의 원인은 '조선을 침략하여 지배한 근대일본이 만든 국민의식 바로 그 자체에 있다'고 얘기한다. 결국 관동대진재 재일조선인 대학살 사건은 전쟁이라는 비극적 참상이 몰고간 예견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이 잔혹한 역사의 진실에 관한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진심으로 그들의 혼을 위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의 당연한 의무이다. 하지만 또 한가지, 앞으로 이 끝나지 않는 진실공판이 끝나기까지 80여년이 지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도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또 한 이 슬픈 역사를 보다 의미있게 기억하기 위해 남겨진 우리의 과제를 풀어나가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 행사를 주최한 아힘나(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나라) 운동본부 대표이신 김종수씨의 대회사 중 마음에 닿는 글귀가 있어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 싶다.
“우리는 1923년 9월 1일부터 벌어졌던 이 엄청난 살육의 현장을 기억해내려 합니다.- 생략- 서글프고 한스럽지만 우리는 다시 그 기억을 더듬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는 살아있는 자들이 인권 역시도 지켜 줄 수 없을 것입니다”
ps.불령 - 불평을 품고 종순하지 않는 태도를 취함
선인 - ‘조’를 뺀 데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인에 대한 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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