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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상권 청구, 감정적 대응은 피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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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구상권 행사 찬성.


탈레반에게 납치되었던 19명의 인질들이 모두 석방되었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안도
의 한숨을 내쉰다. 그들이 피랍되고 난 후, 이루어진 모든 논쟁들은 잠시 접어두자. 소중한
 생명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점에서, 그들의 가족들이 한 어린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우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석방되어 돌아온 그들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지만은 않다. 피랍사태를 야기한 그들의 행동, 즉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가 아닌 선교활동을 떠난 그들
의 잘못을 지적하는 여론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부에서 제기한 구상권 문제
가 이슈로 떠오르며 네티즌 대부분이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9월 4일 정각 현재, 네이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92%가 넘는 사람들이 구상권 행사에
찬성하고 있다.

피랍자들이 진 빚은 무엇?


구상권은 채무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법적 권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갑’이 ‘을’에게 진 채무를 ‘병’이 대신 갚아 줬다면, ‘병’은 ‘갑’에게 자신이 갚아준 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 때 ‘병’이 ‘갑’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을 구상권이라고 한다. 민법 1038조 2항에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구상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랍자들이 국가에게 빚을 져야 한다. 즉, 피랍자들이 한 행동
 -구체적으로 국가의 권고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행동- 이 국가에 손해를 입혔다
는 것이 증명되어야 구상권 성립이 가능하다. 위의 구상권 청구에 찬성한 대부분의 사람들
은 이 논리를 당연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번 따져 보자.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간 행동이 국가에 손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된 사건이 국가에 피해를 입혔던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간 행동과 피랍된 것이 어떤 인과관계를 맺고
있어야 구상권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물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가능성이 생겼다
는 것과 두 사건이 인과관계에 의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명백히 다르
다.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일군의 한국인들은 피랍될 수도 있었던 것이고, 피랍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피랍자들이
국가에 빚을 졌다고 말할 수 있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이 주체가 되어 한 행동이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객체가 되어 당한
행동이 피해를 입힌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가?

감정을 좀 삭히는 지혜가 필요해 보여..


솔직히 나도 화가 난다. ‘거기에는 왜 갔는데? 봉사는 무슨 봉사! 자기 교회 알리려고 그 위
험한델 갔지...’ 화가 난 우리 국민들 대부분의 생각일거라 예상된다. 나 역시 이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이것과 구상권 문제는 별개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자. 미국이 주도
하는 전쟁판에 우리나라 군대를 파견한 것은 정부였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탈레반에게
대한민국 국민들은 적이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 역시 정부이다. 이런 정부가 구상권 운운하
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는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죽음의 사선을 넘나든
이웃이라는 점에서 따뜻하면서도 따끔한 비판을 해야 한다. 그러나 비판이 비난으로 이어지
고, 구상권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이성에 맞지 않다. 차분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