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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파병연장 "놈현스럽지" 않길 바란다

내 친구는 자이툰


올해 초, 군대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라크에 지원했는데 붙었다는 전화였다. 너무 가고 싶어서 부모님도 속이고 지원했는데 붙었다면서 자랑이었다. 주변에 다른 친구들한테 말했더니, “걔 빽 써서 간 거 아니야? 난 떨어졌는데.”이러면서 부러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면 선임들한테 당하는 갈굼도 없고, 돈은 돈대로 벌고 갔다 오면 휴가도 한 달이나 준다고 하니 좋을 만도 하겠더라.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 온 친구는 이라크에서의 생활을 모험담 들려주듯 이야기했다. 이라크에서 사 온 사탕이라면서 선물도 갖다 줬다. 그런데 정작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미군의 만행 등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통역병이라 안전한 곳에만 있었다나 뭐래나. 자기는 안전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자이툰 부대에 지원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이 친구는 미국에 대해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었고, 어차피 미국이 하는 일이면 우리나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친구에게 파병은 군 생활을 좀 더 쉽게 만들어주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11일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이 계속 주둔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이라크 파병 연장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기대감과 기업진출 관련 국가이익을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히 2007년 내로 자이툰 부대의 임무를 종결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난 9월 6일 자이툰 군의 주둔 만료시기를 3개월 정도 남겨 두고 절반 가까운 병력을 교체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파병을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외교부가 말하는 “국제사회의 기대감”과 “기업진출 관련 국가이익”은 무엇인가?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대 테러전쟁이네 어쩌네 하지만, 실질적으로 석유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지난 7월 5일, <2007년 호주 국방백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브렌단 넬슨 호주 국방장관은 "호주가 이라크전쟁에 동참한 이유는 중동지역의 석유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리스펀 전 의장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 회고 : 신세계의 모험(The Age of Turbulence : Adventures in a New World)>에는 "이라크전쟁의 주된 원인이 석유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정치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현실이 서글펐다(I am saddened that it is politically inconvenient to acknowledge what everyone knows: the Iraq war is largely about oil)."는 내용마저 담겨있다.


이처럼 이라크전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는 파병 기간을 연장하려 한다. 부시 정부가 벌인 이라크 전쟁을 돕는 행위는 전쟁 범죄다.


12일 기사를 보면, 이라크에 미군 공습으로 인해 어린이와 여성 15명이 몰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달 바그다드에서도 미군의 작전도중 이라크 어린이와 여성 15명이 한꺼번에 죽었다. 아프간에서는 미국의 오폭이 증가하고 있으며,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군의 민간인 살상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영국군 지휘관이 미군에게 작전지역에서 떠나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잦은 공습으로 인해 민간인들 가운데 탈레반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단다.


만만한 게 대한민국?


미군을 비롯한 파병국들의 인명피해도 늘어나면서 부시 정부를 도와 파병했던 동맹국들도 철군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가 지난해 3천여 명의 병력을 모두 철군한 것을 비롯하여, 영국 또한 한때 4만 명이던 병력을 5천명 이하로 줄이고 2008년 이내에 모두 철군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이라크 주둔 영국군이 현재의 절반으로 감축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실이다. 영국이 파병군을 감축하는 것은 지지하면서 우리나라에는 파병을 연장해 달란다.


우리나라가 만만하긴 만만한가보다. 하긴 부시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고 ‘easy man'이라고 했다던데..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미국 내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사안도 아니고,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부시가 올 가을 최종보고서 나올 때까지 철군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철군 관련 법안 심의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공화당 소속의 레이머 알렉산더 상원의원 역시 "국민과 의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 전략이란 것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면서 "대통령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며 파병에 반대했다. 뉴욕타임즈 역시 부시 행정부가 전 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충분한 명분도 없이 감행한 이라크 침공은 맹벽한 실패, 더 이상 미군들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라크의 미군 철수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무슨 이유로 파병을 연장하려고 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외교부가 말하는 국제사회의 기대는 미국 부시의 기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무고한 이라크인들의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기업진출 관련 국가이익에 대한 부분은 짚고 넘어가고 싶지도 않다.


제발 우리나라 정부가 정신을 좀 차려서 미국의, 그것도 조지 부시 행정부만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전쟁에서 발을 빼길 바란다.



이경민 기자 (yikmin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