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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현대대학족보... 잃어버린 인간미를 찾아서

 대학에선 한창 중간고사가 진행되고 있다. 방대한 시험범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예상문제, 어떻게 작성해야하는지 모르는 기출문제. 평균 6과목 시험 스트레스와 학점에 대한 압박으로 토 쏠리는 대학생들을 위해 조상님께서는 우리에게 '족보'라는 거대한 유산을 남겨주셨다.

  21세기 지금의 족보는 어떻게 진화하였는가. 과수석(과톱), 혹은 공부 잘하는 학생의 노트를 입수하여 복사실에서 대량 복사, 공부하던 가장 기본적인 모습에서 인터넷 족보사이트까지. 지금의 우리가 접하는 족보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졌다.

 '혼자만 살지 말고, 같이 한번 살아보자'라는 시험 족보. 하지만, 요즘은 상대평가, 취업난 등의 이유로 '족보'로 공존하는 모습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선배의 훈수, 노트 복사, 과 공식 족보제작팀, 인터넷 족보사이트 등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서 대학 '족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선배의 훈수로 위기를 대처하자 - 인문․사회계열 학생


 노트복사와 더불어 족보의 일반론을 구성하고 있는 선배의 훈수. 시험에 대해 감 못잡는 후배에게 메마른 땅의 단비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수강신청할 때 선경험자인 선배들로부터 수업스타일에 대한 조사를 한다. 그리고 시험 기간이 가까워지면 후배들은 선수강자인 선배에게 시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시 묻는다. 그럼 선배들은 자주 나오는 곳을 알려주거나 지난번 시험문제에 대해 언급해준다. 인문사회계열 시험은 거의 서술형 문제이기 때문에 시험을 쳤다면 대부분의 문제를 외우지 않아도 알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의 특징에 대해 서술하시오'라고 문제가 나오는데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재수강 대상일 듯.

 선배들이 훈수를 두면 후배들은 알아서 토론해서 답안을 작성한다. 사회현상 적용문제나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가 많은 인문사회계열 특성상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 성공률이 높다는 후문이 있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은 '살아있는 족보'인 선배를 통해 시험위기를 극복한다. 점수는 단지 이빨까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을 뿐...


족보팀 운영을 통해 효율적으로 준비하기 - 의학계열 학생
 


모 대학 한의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 들려준 한의대 족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의대에선 족보선점경쟁은 없다고 한다. 한의대의 경우 C이상만 받으면 진급할 수 있기 때문에 학점이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한의대 족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족보와 약간 다르다. 본과 1~2학년 때부터 족보팀이 구성되어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를 한다. 학번 내에서 공식적으로 과목별로 1~2인을 배치하여 요점정리, 시험 기출문제를 정리해서 이를 전 학년이 공유한다. 본과 3학년이 되면 족보팀은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본과 3학년에 진학하면 18과목이라는 엄청난 과목수를 개인차원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3학년 때부터 전 과목에 족보팀이 배치가 되어 수업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한 학년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졸업 전까지 누구나 한 번씩은 족보팀에 속하게 된다.

 의학의 경우 핵심내용은 존재하지만 경향성이 없다. 시험문제스타일이 변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가 기존족보에서 벗어난 문제를 낼 가능성도 반이기에 족보는 일종의 '아님말고'보험인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족보복원에 대해 더욱 열정적으로 움직인다. 앞서 말했듯이 '경향성'이 없기 때문에 방대한 양이 감당되지 않으면 문제를 집단적으로 외워서 기출문제를 복원해서 만든다. 누구는 1번 문제를 외우고, 다른 사람은 2번 문제를 외워서 복원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복원된 족보를 다음 해 후배에게 넘겨준다고 한다.



 
각 학교의 족보는 여기서 - 족보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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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포트 제공사이트는 많이 들어봤지만, 시험족보와 관련된 사이트는 들어본 적 없다. 하지만, 시험족보를 올리고, 이를 유료서비스로 제공하는 사이트도 엄연히 존재한다. 자료 제공자가 자료를 올리면 제공자가 다운로드에서 생기는 이용료를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실제 올라와 있는 자료가 100건인 곳에서부터 만 건이 넘는 곳까지 보유하고 있는 자료의 수는 다양했다. 

 유료서비스라는 것이 다소 자료접근에 있어서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수요가 있다. 그리고 혼자 공부하고 버리기 아까운 자료들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돈을 버는 학생들도 꽤 있다.


족보의 부재 - 관계의 부재?


 족보가 있다는 것은 선배와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족보가 없다는 것은 선배와의 관계가 돈독하지 않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솔직히 학교에 들어와서 모든 학생들이 선배와 관계를 좋게 유지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배들과의 관계 유지가 쉽지 않은 학생들은 '족보 사이트'를 통해서 족보를 구매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업적인 콘텐츠가 관계의 부재를 틈 타 대학 사회 안으로, 선후배 관계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사이트가 없었다면, 어찌됐든 간에 선배와의 동기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시도'라도 하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족보 사이트'의 등장은 이런 일말의 가능성마저,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부재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도, 문제점도 필요 없게 만든 큰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관계와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을 부추기고, 학점위주,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대학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간편하긴 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이런 모습을 대학족보의 미래상으로 추천할 순 없진 않는가. 다시금 대학 내에서 족보 하나와 1500원 결제가 아닌 족보 하나와 야식, 밥 한 끼를 같이 하는 모습을 꿈꿔보고 싶다.



정윤정기자(babym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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