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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험의 추억, F학점은 일상이었다.

F학점은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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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 귀여워 열공모드



 바야흐로 7년 반 전, 대학에서 시험이란 것을 처음 치렀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를 갓 탈출하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을 즈음, 대학에서 시험, 이것은 생소하디다 못해 나와는 별개의 일처럼 부자연스러웠다.


 당시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현재는 1학기를 남기고 휴학 중)는 막 학부로 전환했던 시기였다. 학부제라 함은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학부로 신입생을 뽑아서(예를 들어 문과대학) 2학년 올라갈 때 전공을 정하는 것이다.(1+3학부제의 경우)


 99학번들은 학부로 뽑힌 첫 학번들이었다. 난 그 다음 00학번이었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은 우리들에게 좋은 전통을 남겨주었다. 쉬지 않고 술 사주기,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여학생에게 대쉬하기, 수업땡땡이 치기 등 고등학교서는 가끔 일어나는 일들을 대학 때는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내가 1학년 때 술 연속 먹기 기록은 23일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2달 동안 지속적으로 이런 생활들을 해왔으니, 시험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패닉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요즘 07학번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러나 과거로선 너무나도 당연한 짓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시험 답안지에 소설쓰기


 이공계 다니는 친구들은 엄두도 못 낼 그런 답안지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시험공부 자체를 아예 하지 않으니, 시험에 대한 답을 쓸 리 만무하다. 그러나 문과대에는 중간고사에 이런 문항들이 종종 올라온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이 그 수업의 중간고사 문항의 전부였다. 이때부터 우리의 건아들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물론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뛰쳐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나름대로 시험이란 걸 해보겠다는 녀석들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기억을 떠올리며 답을 쓰기 시작한다.


사르트르, 데카르트, 칸트 , 트 씨리즈 선생님의 등장과, 김동주, 이상 등 식민지시대 문학가들의 조합, 이런 사람들의 조합으로 똑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장문의 소설을 쓰고 당당히 답안지를 낸다. 그리고 내심 뿌듯해 하며 먼저나간 이들을 비웃는다. “짜식들, 하하”


 그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결과는 먼저나간 이들과 당당히 소설을 쓴 녀석들과 다를 바 없이 D를 맞는다. D학점은 시험에 참가한 사람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최소의 학점이다. 근데, 난 당당히 F를 받는다. 왜, 나만!!


 난 중간고사 때 3장을 써서 냈다. 내 기억으로는 펜이 가는대로 술술 써내려갔는데, 다른 녀석들은 D인데 나만 F인가. 당시, 시험 전에 선배들에게 붙잡혀서 술을 먹고 시험을 쳤었다. 술을 먹고 쓰기 시작하니, 글은 잘 써진다고 생각하면서 쭉 답을 작성하지만, 오타에 비문에 무한반복까지, 인간적으로 문대생이라 볼 수 없는 답안지를 작성한 것이다. 결국, 난 아무런 대구조차 하지 못하고 F를 받으며 다음 그 과목을 도전했다.


두 번째, 시험이 끝나고 잔디밭에서 한 잔 걸치기


 시험을 빨리 끝내는 순서대로 건물 앞 잔디밭에 자연스럽게 모여 앉기 시작한다. 가장 막내가 소주 몇 병을 사오기 시작하고 처음 두 명이었던 잔디밭 인간들은 어느새 15명이 되었다. 소주한 병이 다섯 병으로 과자 한 봉지가 자장면 A세트로 변하면서, 다음 날 시험은 내일 공부하자고 말하고 시험과 하등 상관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노가리깐다.


 특이한 현상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과 녀석들도 잔디밭에서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시험 기간에 잔디밭에 둘러앉아 술을 먹는 무리들이 나타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얼마나 훈훈한가. 이 바보들의 행진이.......


세 번째, 당구장 인생들


 아마 당구세대는 내가 마지막인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 PC방이 등장하면서 당구파와 스타파로 갈렸지만 난 당구를 더 좋아했다. 잘난 척을 하자면 대학교 1학년 때 당구 250을 쳤다. 어쨌든 모든 과에 과실이 있었지만 실질적 과실은 과당이라 불리는 당구장이었다.


 당구를 오랫동안 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기당구를 치다보면 끝을 알 수 없는 승부를 한다. 계속 “결”이라고 외치면서 내기당구의 레이스는 계속된다. 결국 승자와 패자는 없고 수북이 쌓여가는 당구비만 남는다.


 시험 때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시험의 낙제생들, 그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당구장에 모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장면을 시켜먹으며 더 이상 힘들어서 치지 못할 때까지 당구를 쳤다. 역시 내일의 시험은 안중에도 없다.


 대학 와서 당구를 치기 시작한 녀석들은 시험 칠 때 앞에 있는 칠판을 보며 당구의 라인을 그린다. 아마 많은 당구초심들은 이런 경험을 많이 해봤을 거다. 시험 내내 칠판을 보며 당구의 궤도를 작성한다. 하지만 요즘 녹색칠판이 화이트보드로 대체되었으니 요즘 새내기들은 이런 이야기를 잘 모를 거다.


 내가 당구장에 가는 목적 중에는 다른 불순한(?) 의도도 있었다. 내심 당구 150을 치는 98학번 선배누나의 모습을 보기 위해 당구장에서 살았다. 생각해보면 그 누나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당구공을 주시하는 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느꼈었다.


 이처럼 시험기간에 F학점들은 당구폐인이 되는 증상이 심각했다.


한 가지 일화


 시험이 끝나고 학과 종강파티를 하면 서로의 학점을 공개했다.


 난 다행히 1.75로 학사경고를 면했다. 휴~~, 그러나.


 쏟아지는 친구들의 한숨소리.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과 54명의 동기 중에서 내 뒤로 13명이 있었다.


 F학점의 낙제생들. 무려 13명씩이나.


 지금 취업전선에 목을 메고 있는 친구들의 7년 전 모습, F학점은 일상이었다.


 F학점의 로망이라고 불리던 과거의 모습과 현재 F는 생각지도 않는 새내기들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괴리를 느낀다. 무엇이 더 나은지도 잘 모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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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후배들과 친구들, 더 폐인 ⓒ레피니언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