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럼 무관심한 아빠보다 뺨 때리는 아빠가 낫다는 말씀?
-'맞을 짓'을 하는 학생을 만드는 사회를 순순히 받아드릴 것인가.
다음 블로그 뉴스에서 담배를 핀 학생의 뺨을 때린 교사의 행동이 정당하느냐 아니냐로 불꽃튀는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비단 이 문제가 '담배'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는 아닌듯 싶은데 계속 논의가 본질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는 듯하다.
무관심과 체벌. 어째서 이 두 가지 '선택권'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건 하키채로 맞을 것인가, 당구채로 맞을 것인가와 비슷한 문제로 보인다. 무관심, 체벌. 둘다 아이들을 망치는 건 똑같은데.
특히 이중에서 '무관심한 선생보다 뺨때리는 교사가 낫다'라는 글은 교사의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추천수도 높고, 조회수도 높은 이글에 '감히' 딴지를 거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폭력은 정당화가 될 수 없다는 약자를 위한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관심한 교사 < 뺨때리는 교사??
그럼 무관심한 아빠보다 뺨때리는 아빠가 나은가?
교사를 아빠로 바꿔봤다. 주체를 다른 사람으로 치환했을 때 이 공식이 성립하는가. 그렇지 않다. 아, 반복은 지겹지만 다시 한번 얘기한다. 무관심, 체벌. 둘 다 명백한 폭력인데 왜 이 두 개를 비교한 것인가. 애초에 비교의 대상이 아닌데. 난 사람들이 '사회의 규칙'을 위반했다고 생각할 때 '애정있는' 싸대기를 날려야한다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렵다. 혜자누님께서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말씀하신지가 언젠데 아직도 '체벌'을 논하고 있는가.
학생으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둘 것이냐는 아주 걱정 많은 분들의 말이 있을 듯 싶다. 그리고 반더빌트님의 말처럼 자신의 사회에 원칙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아니냐는 말또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여기서 물어보자. '학생으로 하지 말아야할 것''사회에 대한 원칙'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사회의 원칙에 대한 개념 미탑재 학생? 과연 '원칙'이 있기는 한가.
자, 다음 보기를 읽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보시오.
1. 담배 피는 학생은 맞아도 싸다.
2. 염색한 학생은 맞아도 싸다.
3. 교복을 줄여 입은 학생(복장불량학생)은 맞아도 싸다.
4. 과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은 맞아도 싸다.
5. 교내에서 귀걸이를 착용한 학생은 맞아도 싸다.
6. 야자시간에 월드컵경기 보는 학생은 맞아도 싸다.
7. 수업 중에 자는 학생은 맞아도 싸다.
8. 지각한 학생은 맞아도 싸다.
위의 예시 중 맞는 건 없지만, 애들은 '맞는다'. 왜? 학생답지 않은 것은 하지 말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깐.
하지만 도대체 누가 '담배를 피지 않으면서 머리는 염색하지 않고, 교복을 줄여 입지 않으며, 과제를 착실하게 하고, 귀도 뚫지 않고, 수업․야자시간에 졸지 않으면서 다음날 늦잠도 안자고 종이 울리기 전에 제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을 표준으로 삼자고 한 것일까?(헉헉-ㅠ-, 숨차다) 그리고 학생들은 동의한 적도 없는데 언제부터 '국가표준'을 지키지 않는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일까?
사회, 교사가 만들어낸 '맞을 짓을 한 학생'
그렇다면 학생이 맞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학생, 그리고 교사가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학생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입시에 충실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공부에 방해에 되는 것을 하지 않는 학생을 이상적인 학생으로 본다. 하지만, 그런 학생이 진정 '이상'적인 학생이던가.
지금 학생의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는 항목들은 절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두발자유화의 경우도 그러했었다. 중학교 때 나의 친구들은 머리가 3센티미터라도 길면 선생님이 복도에 세워놓고 가위로 싹둑 잘랐었다. '단정치 못하다는 이유로' 이게 일제시대 때 댕기머리는 조선인의 머리라고 싹둑 잘라버린 일본인 교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지금의 아이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인터넷에서 모여 결국엔 두발자유화를 '쟁취'했다. 이젠 머리가 귀밑 3센티미터라고 해서 교칙을 어긴 불량학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처럼, 학생의 표준은 바뀌기 마련이다.
그 누구도 사회가 만든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 도록 하는' 틀을 따라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강요받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규탄해서 근절시켜야 할 명분이 있는 것이다.
원칙 없는 '원칙'으로 아이들에게 '싸대기'를 날리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이는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모범생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들에는 공통점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교사는 학생이 과제를 안해도 넘어가고, 어떤 교사는 안 해오면 바로 어택 들어가는 교실에서 어떤 원칙을 말할 수 있는가? 결국체벌이란 교사 개개인이 어떤 원칙을 세우고 이를 어떻게 집행하는 가에 달려있는 문제로 나아간다. 짧게 정리하자면 사회와 교사에겐 '원칙'은 없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왜 나한테만 그래?'라고 짐이 많다고 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늘 학생들이다. 학생들과 사회에서 관계, 도덕적인 행동을 가르쳐주는 그런 짐조차 감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면, 교사라는 직업은 공무원이지 교육자는 아니지 않는가. 교사가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누가 학생의 편을 서준단 말인가. 가정도, 학교, 정부도 그 누구도 아이들과 원칙을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하지 않고 정체불명의 규칙에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상황에서. 내가 학생이라면 답답해서 파란하늘 쳐다보며 담배 한 모금 빨겠다.
더 이상 학생들에겐 '그냥 하지마'와 '학생이니깐'이라는 논리는 먹히지 않는다. 교사라는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손에 '사랑의 매'를 쥐는 것이 잃어버린 교사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는다.
"선생님, 학생한테 니코패치라도 사준 적 있어요?"
선생-학생 간의 대안은 존재한다.
교사들 중 '너 무슨과 갈거니' '대학은 갈꺼니?' 이외의 대화를 해본 교사가 얼마나 있을까. 학생에게 왜 담배를 피는지, 왜 지각을 하는지 인간대 인간으로 물어보기라도 한 교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교육자는 교육자로서 흩트러지지 않는 길잡이 역할을 해야한다. 그 방법으로 택해야하는 것은 결국 진부하지만 '대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참대화. 진부하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부할 수가 없는.
담배피지 말라고 때리는 어른 선생님에서 느껴지는 니코틴향을 맡으며 애들은 얼마나 시답잖게 느낄지 생각해보았는가. 결국 '어른이 되면 다할 수 있다, 억울하면 나이를 먹던가.'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누구 약올리나? 학생이 담배를 피면 왜 피는지, "같이 한번 끊어보자, 선생님도 안필게" "선생님이 니코패치 사줄게"라고 말하는 교사가 있나? 담배 끊기가 얼마나 힘든데, 피지 말라고 해놓고선 도움도 안주고 그러는 게 과연 인간적인가.
이는 흡연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이 아닌 선생-학생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라는 것을 통해 바뀔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학생과 같은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교사가 진정한 선생(先生)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사회의 압박 때문에 너무 오랜시간동안 외면할 수 밖에 없었을 뿐. 누구도 희생할 필요는 없다. 참교육자와 희망적으로 세상을 보는 학생이 만들어 낼 새로운 세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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