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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부업체, 한 번 발디디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지윤씨가 처음 대부업체를 찾은건 작년 9월. 공부방을 차려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그리고 할머니까지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편찮으신 할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다니시던 직장마저 그만 두신 상태였고, 강한 신념으로 신학대학원에 들어가신 아버지께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 드리고 싶었다.


그녀는 공부방을 차리기 위해 작은 오피스텔을 얻었고 보증금의 10%를 계약금으로 넘겨준 상태였다. 창업대출을 받을 수 있을거라 장담 했지만, 학교 다닐 때 받았던 학자금 대출의 이자를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이미 신용불량자가 돼 있는 상태였다.



은행의 문턱은 너무 높아


휴학생이었던 그녀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은행에서 보증금 500만원을 빌리기엔 은행의 문턱이 너무 높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대부업체 광고기사를 보게 되었. 며칠을 망설이던 끝에 찾아간 대부업체에서 그녀는 “500만원을 빌리시면 일주일에 이자가 50만원이다” 라는 말을 듣고 그냥 나와버렸다


하지만 잔금 만기일이 점점 다가왔고 어느 곳에도 손을 내밀 수가 없었던 그녀는 결국 다시 다른 대부업체를 찾아갔다.


그녀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돈을 빌려주기 전엔 여러가지를 물어봤다. 여기 오기 전에 갔다 온데는 없냐, 자기들끼리는 다 안다면서 전에 갔던 곳의 이자보다 더 깎아 주겠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 상담을 마친 시간이 저녁쯤이었는데, 그 땐 거의 모든 금융업이 마친 시간이었고, 당장 내일이 잔금 계약 날짜라 초조한 마음에 돈을 빌렸다. 이자는 월 60만원. 실제로 받은 돈은 500만원이었지만 그 쪽에서 제시한 상환금액은 수수료까지 포함해서 총 650만원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없는 악순환의 반복


월마다 60만원을 이자로 갚아나가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이 들었지만 장녀였던 지윤씨는 계속해서 생활비도 보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 당시에는 하루하루를 넘긴다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들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집안 생활비로 다 보태고 나면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


결국 그녀는 또 다른 대부업체를 찾아갔다. 일단 60만원이라는 높은 이자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 그보다 이자가 더 낮은 곳을 찾아가는게 좀 더 나을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이름으로 계약되어 있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A 대부업체에 일단 되는 대로 500만원을 갚았다. 하지만 A업체에서는 남은 돈 150만원이 아닌 650만원에 대한 이자를 계속 요구했다. B회사에서 빌린 700만원에 대한 부담도 컸고, 또 남은 돈에 대한 독촉이 심해지면서 그녀는 계속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오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 대부업체에 발을 들여놓으면 악순환이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서민들 배반한 대부업체 합법화


여기 저기 도움을 청할 곳을 많이 알아봤지만, 정말 막막했다. 그러다가 TV의 한 프로에서 민주노동당이나 금감원이 도움을 준다는 얘기를 듣고, 민주노동당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 그녀는 대부업체 다섯 곳을 이자율 위반 등의 사유로 고소를 한 상태.


그녀는 현재 국가에서 대부업체의 금리를 연 49%로 낮춘 것도 서민들에게는 터무니 없이 높다고 말한다.


“대부업체를 국가에서 인정한건 100만원을 빌리면 채권자가 채무자한테서 절반 정도(50만원)를 뜯어갈 수 있는걸 합법화 한거다. 정말 말이 안된다. IMF 이후로 은행이 손해를 많이 본 이후로 대출할 수 있는 은행의 문턱은 턱없이  높아졌다. 목돈이 당장 필요한데, 그게 금방 은행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급하게 써야 하는 상황이면 결국 서민들은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이이서 그녀는 정부가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직도 고소를 준비하며 외롭게 싸우고 있다. 혼자 여기저기 알아보고,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노래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학교도 마저 다니고 싶단다. 그녀의 이런 소박한 꿈들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