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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대생들, 학내 상업 시설 '우리도 비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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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ECC

이대 'ECC' 논란, 상업시설이 들어 선 경계의 문제인가?

요즘 이화여자대학교 신축건물인 ECC에 대한 논쟁이 열을 올리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멋드러진 조형물에 불과한 대학 건물 하나에 이토록 언론의 과도한 관심이 쏠린 이유는, 이 안에 들어선 각 종 상업시설들 때문이다. 스타벅스, 소호앤노호, 닥터로빈, 교보문고, 리치몬드제과 등의 상업시설들은 이미 들어와 있고, 8월에는 영화관 개관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다시 ‘이화여대’가 상업화로 변해가는 ECC로 인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이상 이대 내 분위기도 그리 정적일 수만은 없는 형세다.

ECC 건물 안에서 만난 민희씨(23)는 “건물을 비워 놓는 것보단 임대료 사업이라도 해서 수익성을 내는 것이 좋지 않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학교를 위한 발전이니, 그리 나쁘게 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상업시설로 벌어들인 돈이 모두 이대 학생들과 교내 발전을 위해 쓰일 것이라는 이같은 견해는 학교 측이 총학생회를 비롯한 2만 학생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해왔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처음, 완강하기만 했던 학생들의 분위기도 조금씩 완화되는 추세라고 한다. 1학년 윤정씨(가명)는“상업시설이 학교에 없다고 해도 어차피 살 사람들은 다 산다.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아졌고,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윤정씨 말처럼 굳이 스타벅스나 다른 상업시설이 이화여대 안에 없다고 해도, 학교에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상업시설들이 줄 지어 늘어서 있다. 결국 그녀 말처럼 어차피 나가서 쓰게 될 돈, 학교에서 쓰는게 뭐가 문제냐 라는 식의 질문이 나올 수 있는 문제다.


이대 학생들, 'ECC 상업화'가 비호감인 이유

그렇다면, 정말 이대 학생들은 ECC 내에 들어선 상업시설들에 대해 왜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자연대 한 학생(23)은 “스타벅스가 수입의 일정 부분을 학교 학생들에게 다시 되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돈, 어차피 다 학생들 주머니에서 나갔던 돈 아닌가. 이것으로 '수익성'을 논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 학생들은 “ECC는 소수 학생들만을 위한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ECC가 들어와 편한 점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우리 모두를 위한 곳’이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학교마저 학생 간에 ‘층’을 갈라놓는 느낌이다. 그 안에 스타벅스 뿐 만 아니라, 빵집이나 꽃집 모두, 학생들이 쓰라고 마련된 공간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학관 앞에서 만난 2학년 태송씨 역시 “물론 다른 학교 친구들을 데려오면 반응이 좋다. 이대를 대표하는 건물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하지만, '과연 ECC가 이렇게 서둘러서 지어질 만큼의 가치가 있었는가.’ 라는 점에 대해선  확신이 없다.”며 중립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대 내 많은 건물들은 만든 지 몇 십 년이 지나 낡고 불편한 점들이 많다. 만나는 학생들마다 ‘동아리 방’과 같은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자주 꺼냈다.
민경씨는“사실, 동아리방이 매우 모자란다. 한 개의 동아리방을 4~5개 동아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려쓴다. 과방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에게 ‘개인주의’라고 손가락질 하기 전에 우리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마련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학교에 이런 저런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야외공간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 ECC건물 위에 잔디밭이 조성돼 있지만, 말 그대로 건물 위라서 큰 나무는 심을 수가 없다. 외관상 보긴 좋을지 모르지만, 낮에는 햇 빛이 뜨거워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며 맞장구를 쳤다.

학생을 '소비자'로 보기 시작한 대학들, 경계하자.

사실, 그 날은 학교 축제 기간이었는데, 원래 만나기로 했던 총학생회장은 단식으로 인한 탈진과 학교 측과의 마찰로 인해 당시 인터뷰조차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부총학생회장 정복희씨는 “얼마 전 어느 신문에 ECC가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좋은 곳이라며 소개가 됐더라. 어딜 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좋다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그래, 이런 건 둘 째 치더라도, 사업으로 학교 수익이 점점 높아지면, 학생들 등록금은 좀 낮춰줘야 맞는 것 아닌가.”라며 답답해 했다. ECC의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교내에서 만난 한 학생은 “ECC 건물 내 강의실들은 방음이 안 된다. 강의실이 유리로 되어 있어 구두 소리도 너무 잘 들리고, 밖이 다 보이기 때문에 집중도 하기 힘들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부총학생회장 정씨는 학생들이 학교 밖 상업시설로 인해 안 그래도 많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이제, ECC로 인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학교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돌고 있다. 우리학교는 전체 대학 중 이월적립금이 1위다. 학교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다시 복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하더라. 고대에도 ‘고엑스’라고 불릴 만큼 많은 상업시설이 있는데, 당시 고대 학생들도 한 3년간 불매 운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안 되는 문제였다고 본다. 극소수의 문제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동의하면, 바꾸는 게 맞다.” 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녀의 말처럼  현재 서울 내 수 많은 대학들이 교내에 상업시설들을 유행처럼 지어올리고 있는 있는 추세임을 비추어 보면 이화여대의 ECC만으로 끝날 문제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벌써 몇 년 전 교내에 영풍문고, 버거킹, 스타벅스 등이 자리잡은 고대를 시작으로, 2010년 홈플러스 완공 예정인 서강대와, 그 밖에 경희대, 서울대, 한양대 등이 대학지주회사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학의 본질을 운운하는 이상적인 시대의 파라다이스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을 학교의 재산불리기를 위한  ‘소비자’의 개념으로 다가서려고 하는 현 대학들의 태도는 분명 우려하고 경계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이대 학생들에게 ECC 말고, 등록금이 어디에 쓰였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자, 한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어디에 안 써도 되니까, 그냥 좀 100만원만 내렸으면 좋겠어요. 부모님께 죄송해 죽겠어요."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