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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입으로 뱉으면 아는 말, 손으로 뱉으면 모르는 말.

 

아, 나 한글 잘 모르나? ...... 모른다!


스무 살이 넘어 입대를 앞둔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인 술자리에서 그들(군입대자들)과 나는 캠퍼스에서의 추억을 담보로 의리에 불타는 약속을 하곤했다.


이른바, “편지는 꼭 쓸게......”라고 하는 눈물의 약속을...


그렇게 대학 2년 동안 짧은 쪽지 수준에 머물렀던 나의 ‘의사전달매체’가 점점 장문의 편지로 변해가야만 하는 시기상의 ‘대 변환기’를 맞게 되었다. 물론 처음엔 중학생 시절의 추억과 함께 편지지를 고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그런데 재미는 딱 여기까지.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편지를 쓰다 말고 인터넷에서 한글 맞춤법을 검색하고 있는 어이 없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입으로 뱉으면 아는 말, 손으로 뱉으면 모르는 말


일곱 살 ㄱ,ㄴ부터 시작해서, 초중고 12년, 거기다 대학교까지 근 15년을 써왔던 한글이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아직까지 이런 말도 안되는 혼란을 겪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런 문제는 비단 편지뿐만 아니라 가벼운 핸드폰 문자에서 조차 나를 괴롭혔다. 특히 윗사람이나 후배들한테 문자를 보낼 때 나는 본의 아니게 말을 고르는, 즉 헷갈리는 말을 애써 비껴가려는 '버릇 아닌 버릇'이 생겨버렸다.


대표적으로 가장 헷갈리는 것은 바로 “되”와 “돼”의 구분. 어느 정도 눈에 익으면 별로 헷갈리는 말도 아닌데, 글로 쓰려고 보면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우춤주춤 망설여 하며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고 한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요즘 일찍 일어나는 게 익숙치가 않아.” 에서 ‘익숙치’는 틀린 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익숙지’가 맞다.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것에 길들여지다 보니 글로 옮길 때 좀 어색한 것들 중 대부분은 잘 못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래는 내가 종종 머리 휘날리며 글을 쓰다 난관에 부딪치는 혼란 속의 단어들이다.


1. 미소를 띄우다. 미소를 띠다->미소를 ‘띠다’

2. 영어에 너무 목매는거 아니야? 목 메는거 아냐? -> 목매는

3.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실재로는. ->실제로

4. 그녀는 이제 홀몸이 아니다. 홑몸이 아니다 ->홑몸

5. 정의를 좇아 등록금 투쟁을 하겠다. 정의를 쫓아 ->좇아

6. 설을 세다. 설을 쇠다-> 쇠다

7. 나 어떻게? 나 어떡해? -> 어떡해?

그렇다면 이렇게 초특급으로 기본적인 단어들이 한국 정통 토박이라 자신하는 나에게 이토록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왜 그런걸까.



어디서부터 왜, 어떻게 잘 못된 걸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


한글을 모른다는 자괴감에 한참 빠져있을 때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토익 통과 시험 말고 한글 통과 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것은 당장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우선순위의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영어 단어 몇 개를 더 외우고 말할 줄 아는 것보다 한국어를 정확하고 바르게 알고 있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20대들은 어떻게 보면 한글의 중요성보다 영어의 불가피한 필요성 종용받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또 한 그것은 대학에 와서도 ‘취업’이라는 넘기 힘든 관문과 맞물려 토익,  토플이라는 장벽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문제는 그만큼 우리의 말과 글에는 점점 더 소홀해져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종이에 글을 쓰는 기회 전보다 훨씬 적어졌다는 데에 있다.  한글뷰어는 틀린 글자가 있어도 자체적으로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본인이 설마 한글을 모를까라는 의심을 하기가 어렵다. 초등학교까지 의무적으로 쓰곤 했던 일기도 요즘엔 자신의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쓰는 것으로 대체하기 때문에 점점 더 종이에 직접 글을 쓰는 일이 적어졌다. 생각해보니, 공책을 사더라도 전공책을 요약하거나, 교수님의 말을 받아 적는 것 외에 내 생각을 끄적거려보는 어떠한 진지한 시간도 제대로 없었던 것 같다.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단연코 인터넷과 문자의 무분별한 ‘한글질’이다. 문자를 한번 보내는 데에는 띄어쓰기까지 포함하여 총 45개의 글자가 들어간다. 이 작은 네모칸 안에 자신이 보내려는 모든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우리는 멀쩡한 글을 줄이고 줄이는데 이골이 난 상태. 인터넷 공간에서도 우리는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글을 감정에 따라, 머릿속에서 여과없이 흘러나오는 생각들을 그대로 옮겨 치느라 맞춤법과 띄어쓰기‘따위’는 틀리더라도 그냥 애교로 넘어간다.  이런 것이 몇 년 동안 쌓이고 반복 되다보니 제대로 된 한글을 쓰는데 그만큼 힘이 부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기 위해 ...

 한 국가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한국어는 세계적으로도 그 독창성과 우수성이 입증된, 한국 최고의 자부심이다.


물론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 신종 외계어와 외래어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정말로 지켜내야 할 것과 수용해 나가야 할 것은 구분되어져야 한다.


 소설이나 시를 보게 되면 한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어휘들이 꽤 있다. 내가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미숙한 점이 많다는 것은 앞서 계속 말해왔으므로 두 번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한국의 대학생으로서 이제부터라도 내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그리고, 만약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이제 한글 뷰어에 의지하기 보다는 스스로가 빨간펜을 들고 자신의 한글 실력을 냉철하게 비판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영어 단어집이 아니라 헷갈리는 ‘우리말’에 대해 정리해 놓은 한글 단어집을 사게 되었다. 시중에 이렇게 헷갈리는 우리말을 정리한 책이 꽤 되는 것 같다. 고르는데만 해도 한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자, 이제 단 돈 만원(조금 넘는......)으로 진정한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자.
 모두들 서점으로!!!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