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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하늘 아래지만 ‘이웃’이 있었습니다.


극장의 객석이 꽉 찼다. 여느 때와는 달리 웅성웅성 소리에 유독 시끌벅적하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평소의 객석과는 달리 여기저기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 목소리까지 들린다. 한 층 들뜬 목소리들이 극장을 떠돌아다닌다.
이곳은 바로 충무로 영화제 ‘엄마 없는 하늘아래’ 상영관의 풍경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고 누구나 어렴풋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영화.


1977년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13세 소년의 소년가장기로  당시 11만 관객을 울음바다로 만들어서 화제가 됐던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희 어머니말론 이거보고 안울면 목석이래요ㅎ’
하하. 가슴을 한번 쓸어내려 본다.

30년 만에 다시 보는 사람들에겐 향수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그 시절에 대한 이해를 형성할 수 있는 영화다. 아니 그런 것들조차 넘어서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영화라 하는게 더 맞겠다.

영화의 전반부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시 속의 행복한 핵가족과는 다르게 70년대 풍경인만큼,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아담한 초가집들에 기찻길하며 건물에 가리어 지지 않은 넓고 둥그런 하늘까지 참으로 고즈넉하다. 나오는 사람들도 곰살갑게 다가온다. 촌스럽지만 따뜻해 보이는 옷을 입고는 꼬질해서 귀여운 아이들. 소박해서 맑아 보이는 어른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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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절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고되어 보인다는 마음 역시 지울 수 없지만, 프레임 밖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바짝 몰입해서 서글퍼지기보다는 애틋한 향수로 더 짙어진다. 영화의 색감은 내 촌스런 어린 시절 사진의 색감과 꼭 같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이 아버지의 교통사고가 정신착란으로 재발하면서 불안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아픈 몸으로 아버지 대신 계속 일을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된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먹먹함도 어찌할 수 없는데 어린 아들들을 두고 엄마가 죽는 영화의 장면은 사람들의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만든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아버지의 병마저 악화되자, 의젓한 장남인 영출이가 철없는 동생 영문이 그리고 철호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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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 없는 하늘아래'의 한 장면 /출처/매일경제



의젓한 영출이가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조개 캐고 염전에서 일하며 동생들 자기가 먹여 살리겠다고 코묻은 동전을 세는 모습, 맛있는 음식 앞에서 가족이 생각나 그 음식을 기어코 싸와 아버지에게 드리는 모습. 안타깝지만 기분 좋아질 수 밖에 없는 이런 장면들을 보니, 이런 아이들을 더 지켜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긴 건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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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작 MBC드라마 '야망'

그러면서 내 어린 시절 기억도 났다. 남매 중 장녀인 나는 어릴 적 ‘야망’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유난히도 많이 울었다. (잠시, 야망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시는지? )
 

평소엔 동생을 쥐어박고 괴롭히다가도 이 드라마를 본 날만은, 동생이 잘못한 것도 '제가 한 거예요' 라며 동생을 뒤로 숨겨 주었다. 내가 아닌 듯하기도 한 어린 시절의 내가 꿈틀 내 안에서 살아난 기분. 맑아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문화라는 것은 사람을 곧잘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의 ‘이웃’을 한번더 돌아보게 하는 감수성을 길러준다. 영출이 아버지가 병 때문에 일을 못하자 친구들이 병원비를 대어준다거나 ‘건강이 좋아지면 또 일할 수 있는 거’ 라며 집을 그냥 빌려주는 작업반장, 영출이 어머니가 출산한 후 그들의 넉넉지 않은 형편을 아는 동네이장이 슬쩍 멸치를 가져다주는 장면, 또 정신병원에 무료로 입원하는 기회를 얻는 영출이 아버지, 영출이 학교 사람들이 영출이를 돕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달려오는 장면.

이런 장면들이 이젠 참 보기 힘든 풍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행동들이 상식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일을 직접 행하지도 보지도 못하진 않았나 하면서 말이다. 우리 주위에 힘든 이웃에 대해 난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가. 이웃이라는 말의 어감에서 따뜻함도 많이 날아 가버린 듯하다.

이웃해있기에 눈에 보이는 이웃의 슬픔에 눈 감을 수 없다. 그래서 지나치다 싶게도 영화 속 이웃들이 부모 없는 아이들을 흩어지게 하려는 모습도 있었지만, 이웃의 영출이가족에 대한 관심,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 우리 이웃의 죽음에조차 무덤덤해진 세상이 된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난 특히 동네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며, 영출이네 가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의논하는 모습이 참으로 욕심났다.  


영출이의 영화 마지막 대사,
"엄마 없는 하늘 아래지만 이웃들은 우릴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엉엉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쏟아내는 울음 만큼 세상이 좀 더 맑아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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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 '엄마없는 하늘아래'는 30일 오전 11시 30분,
명보극장에서 상영된다.

오산이 기자(ymj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