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신사임당을 화폐인물로 선정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화폐는 단순히 국내에서 유통되는 것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통용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대표선수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가 우리나라의 현 시대, 특정 공간의 집단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신사임당을 신사임당으로 기억하는가.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라는 수식어가 있기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현모양처’가 잘못된 것인가. 난 현모양처라는 것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화폐인물의 선정이 큰 의미를 지닌 만큼 ‘현모양처’ 신사임당이 마치 한국사회 여성들의 욕망인양 비치는 점, 그리고 한국 여성들을 그러한 이미지로 가두어 두는 것이 우려된다.
특히, 신사임당이 실제 역사적으로 현모양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현모양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을 보면, 신사임당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재구성되고 필요에 의한 이미지들이 덧대어 졌는지를 알 수 있지 않는가.
현모양처라는 말의 역사적 맥락을 보면, 근대식민지교육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정치경제계에서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해서 그들의 과거가 용서될 수 없는 것처럼, 현모양처라는 말에서 아무리 따뜻함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생성의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은 조선인들을 잘 훈육하기 위해서 여성들에게는 현모양처를 교육했다. 의도된 욕망을 여성들에게 주입된 것이다. 마치 그것이 최고의 여성상인양, 그래야 여성들의 사회참여나 욕망발현으로 인한 복잡함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준에서 탈락하는 여성들은 여성으로 취급받지도 못했다. 현모양처로서만 여성일 수 있었던 거다. 그런 압박이 아직도 내재해있긴 하다. 하지만 그때에 비해 여성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좋은 아내 어머니여야만 한다는데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사임당의 선정문제에 대해서 물고 늘어지는 것을 피곤하다고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신사임당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에 목숨 건다고 손가락질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나는 이러한 고민이 없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제기와 공론화가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왜 화폐인물선정이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는지도 의문스럽다.
또 우리의 사고를 드러내고 해체해 보는 작업은 얼마나 중요한가.
일제식민지시대에 그랬듯, 독재시대에 그랬듯, 국가가 욕망하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교육을 습득하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지향으로서 현모양처를 꿈꾸는 것이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욕망이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고민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진 않을까.
나는 의도된 욕망이 투영된 인물 (아니 오히려 이미지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욕망대로 시대를 살아간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이 시대의 모델이 됐으면 한다.
또 하나, 여성사를 연구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역사 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여성인물들이 너무 많다. 설령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도 역사 속의 여성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손가락에 두세 명 꼽을 수 있을 정도밖에 안된다. 여성계에서도 침묵하고 있는 훌륭한 여성인물들을 많이 발견하고 그런 인물들에 대한 인지도까지 높였을 때 화폐 인물 선정에 대해 더 떳떳이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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