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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평 쪽방, 할아버지들에겐 몸도 마음도 추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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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가 느껴지던 복도


11월 18일, 서울의 날씨가 올 가을 들어 처음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졌다. 칼 같은 바람이 몸 구석구석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꽁 꽁 언 손과 얼굴을 연신 비벼대며 우리는 서울 동자동의 쪽방들을 찾아 들어갔다. 추운 겨울,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한 1평 남짓한 쪽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계실까?







#1 겨울에도 찬 물밖에 안나와


임시중 할아버지는 올해 연세가 67세이다. 쪽방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가 많은 독거노인이다. 1평 남짓한 방에 냉장고며 텔레비전에 가스버너 파, 마늘 등 많은 것들이 들어 차 있다. 두 사람 이상이 앉기는 힘든 공간이다. 방은 전기로 데워주니까 그나마 훈훈한데 물은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단다.

“이 방에 살게 된 지는 4년 됐어. 그 전엔 다른 쪽방에서 9년 살았고, 어느 날 술 많이 마시고 서대문 고개 넘어가다가 어디에 머리를 심하게 박았어. 그때 구청에서 소개해준 데 4년 살고, 여기로 온 거지.”

그러고 보니 왼쪽 이마가 푹 패이셨다. 당시 병원에서 치료는 받으셨냐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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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추워지기만 하던 쪽방...

어보니 피도 안나고 해서 그냥 내버려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푹 들어갔다고 하신다. 다른 아픈 데는 없으시냐고 하니 다리에 힘이 없어 자꾸 풀리신단다.

"병원엔 안가. 가서 뭐해. 한번씩 구청에서 나와서 나같은 사람들한테 약을 무료로 배급을 해줘."

그래서 얻은 약을 들여다보니 진통제다. 병원치료받으셔야지 이런 진통제 바르고 지내면 아픈 거 더 악화된다니까 그렇게 아픈거 아니라고 허허 웃으신다.

“방세는 한달에 17만원이야. 내가 기초수급권자라서 한달에 40만원이 나오는데 방세내고, 반찬사고 하면 별로 남는 게 없어. 또 공공근로 같은 것도 나이 많다고 시켜주지도 않아. 일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조그만한 방에 하루 종일 지내기도 답답하지 않을까. 하루 종일 뭐하느냐는 질문에,
“아침 10시쯤 되면 전철타고 나가. 나 같은 노인은 전철비가 공짜야. 전철타고 강남이나 의정부,인천같은 데 내려서 한 5,6층짜리 아파트로 가. 아파트 가서는 경비아저씨한테 힘들어서 나왔다고 얘기 잘하면 가끔 들여보내주거든. 그러면 아파트 벨 눌러서 힘들다고 좀 도와달라하면 천원,이천원씩 주는 사람도 있어. 그렇게 돌아다니면 하루에 칠,팔천원은 벌어. 그렇게 나가서 한 오후 3시쯤 다시 집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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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고추, 고추장이 늘어져 있다

좁은 방이지만 채소에 과일하며 양념이 많다. 방세내고 남는 돈으로는 반찬값으로 많이 나간단다. 구석에 찬밥이 가득 있길래 이거 데워드시냐고 물어보니 내일 아침에 국에 말아 드신단다. 따로 부엌이 없어 좁은 방 안에서 가스버너를 켜놓고 조리를 해야한다.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거 상관없다고 손을 내저으신다.

"여기 쪽방 들어오기 전에는 동대문 시장에서 지게졌어. 사람들 물건사면 배달하는 일하는거. 그거하면 하루에 2만원씩 받고 또운좋으면 고생한다고 5천원씩 주는 사람도 있었고."

"젊을 때는 죽을 생각도 많이 했어. 너무 가난하니까. 내 팔자는 왜 이렇나 했지. 인천행 지하철타고 끝으로 가면 강이 나오거든. 거기서 죽으려고 했었는데, 죽지는 못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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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도 찬 물 밖에 나오지 않는 세면실.

할아버지를 돌봐줄 가족은 없다. 6.25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누나가 한 명있는데 돈 없어서 이렇게 사는데 가족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고 하신다.

"아가씨들 나 도와주러 온거야?"  그 말에, 저흰 복지사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도와드릴 순 없고 할아버지들 불편하신거 없나 알아보고 기사 쓰려고 해요.하니 "에이,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이제 바라는 것도 없어. 그냥 반찬 넉넉히 사게 돈만 조금만 더 나왔으면 하지.."


#2 호적상 이유로 기초 수급권도 받지 못해

우리가 두 번 째로 찾아간 옆 건물의 김 모 할아버지 방은 조금 더 깨끗하고 따뜻한 편이었다.

김 씨(65) 할아버지는 20년 넘게 연락이 두절된 아들과 딸의 이름이 호적에 올라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권 판정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국가에서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생활은 이 곳에 들어오시기 전 경비일로 모아두었던 돈으로 간간히 생활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가끔 공공근로로 한 달에 39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오시긴 하지만, 이 일 조차도 몸이 편찮으셔서 마음대로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일도 제대로 못해. 저기 저 약 없으면 바로 죽는 거야.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간에 무리가 가면 바로 쓰러져. 고치려면 간 이식을 해야 하는데 수술이 칠천만원이 든다는데, 뭐.”

방 한 켠에는 각 종 약봉지가 흩어져 있었다. 병원에도 가 보셨지만, 십 여일 입원해 계시다가 퇴원 하셨다고 한다.

“노숙자만 들어오면 병원 운영이 되겠어? 병원에서는 위급환자들만 받는데도 침대가 모자르니까, 우린 그냥 퇴원 시켜야지.”

할아버지는 간경화 때문에 짠 음식을 드시면 안되지만, 점심, 저녁을 복지관에 가서 해결하다 보니 의지와는 상관 없이 짠 음식을 먹을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나라에서 좀 더 편안하게 사실 수 있도록, 지원해 줬으면 좋게다 하는 생각은 안해보셨을까? 

“아직 우리나라 복지 시설이 그럴만한 여건은 못되지. 영구 임대 아파트가 있긴 한데, 그것도 돈을 좀 내야 들어가거든.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 돈 없으니까 못 들어가.”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방에서 텔레비전만 보신다. 보통 밖에 잘 나가시지 않는다. 나가봤자, 좋은 옷 입은 사람들, 맛있는 것들만 눈에 보이니, 안 보는게 훨씬 더 낫다고 말씀하신다. 간경화에 걸리신 할아버지를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지사는 자주 방문하는지 여쭤보자, 가끔 여름에 봉사단체가 소독약을 쳐주긴 하는데, 복지사를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헤어진 아내, 유학간 딸,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들. 더 자세한 것은 물어 볼 수 없었다. 혹여나 당신 모습이 이렇게 알려질까 싶어, 이름도, 사진도 찍지 않았음 좋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애들... 찾을라면 찾을 수야 있지. 그런데, 뭐 이렇게 되서 찾으면 뭐해. 짐만 되지. 그냥 이대로 있다가 혼자 가면 그만인거야. 내가 국민연금 탈 게 있는데 나라에서 그걸 안줘. 내가 그 돈 지들 주식하라고 준 돈도 아닌데, 왜 내 돈을 안주는건지 모르겠어. 그냥 내 꿈은 그거 빨리 받아서 쉼터에 가는거야. 거기서 그냥 편안히 죽고 싶어"


오산이&나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