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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페미니즘, '으악' 하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열 번 생각하고 말해도 본 전 못건지는 사회 ...

성차별은 아직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내가 만나 본 사람들은 남녀 불문하고 대부분 yes라고 얘기한다. 21세기를 쉴 새 없이 질주하고 있는 이 와중에, 난데없이 성차별이 웬 말이냐, 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이 비단 고지식하다고 넘어갈 어른들만의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술자리에서, 그렇게 사이좋았던 우리네 남녀동무들이, 페미니즘의 ‘페’자만 나오면 들고 일어나 버럭버럭  달려드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이유가 뭘까? 우리의 남학우분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왜 그리도 정색하실까. 혹은 여학우분들마저 ‘극단적 페미니즘’은 질색이라며 표정이 굳어지시니 뭔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남과 여를 넘어, 그 이상을 얘기해야 할 때

대학교 내에 만들어진 여휴게실만으로 이런 남녀들의 생각을 다 표현할 수 없겠지만, 내가 만난 L씨(국민대 법학과 24.남)의 얘기는 짚고 넘어갈 만하다.


“우리 학교에 여휴게실이라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잖아요.‘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은 그 외 모든 장소인 거고... 그러니까, 남녀의 공간은 있고, 여자만의 공간도 있는데 남자들만의 공간만 없다는 건 좀 이해가 안 돼요. 남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웃통 훌러덩 벗어던지고 그러는 건 아니잖아요. 여자들 앞에서 편히 쉬는 것도 편치 않아 하는 남자들도 있고, 또 남자들도 여자들한테 감추고 싶은 것들이 분명히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똑같은 의미에서 이런 소수의 남자들도 존중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이지만, 모든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즉, 이제 남자와 여자라는 단순히 생리적인 차이로 이들을 구분하는 것에 더하여, 이를 넘어선 보다 많은 ‘다양성’의 개념으로 모두를 바라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평소 관심이 많은 M(고려대 독문과 24.여)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성 안에서도 수많은 개인이 있고, 그건 남성도 마찬가지죠.‘그 다양성과 각각의 차이에  기반해서 어떻게 하면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게 과거 페미니스트들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 한계는 지금 분명히 존재하는 거죠.”


페미니즘, 눈엣 가시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이유


여성주의, 남성주의가 생겨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들을 나누고, 구분 짓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여태껏 가장 우선시, 당연시 되었던 것은 1차적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의 구분이었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페미니즘은 계속해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인정,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 존재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여성주의가 왜 남자들에게 지금까지도(과거는 말 할 것도 없고) 눈엣 가시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가.


L씨는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 여성의 목소리를 좋게 드러내는 거에 대해선 불만이 없어요. 근데 그걸 너무 표면적으로 ‘으악’하고 드러내서 시끄럽게 만드는 게 싫은 거예요. 자기 권리를 주장할 때  필요 이상으로 너무 과장되게 표현하고, 전체가 그런 건 아닌데 마치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 거죠.”라고 얘기했다.


이것은 비단 남자들만이 느끼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페미니즘이라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닌데, 몇 몇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터져나온 일부 목소리들이 오히려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M씨는 "반성폭력 운동이라는 게 성폭력 자체가 (사회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건데 지금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개념만 남아 버렸어요. 즉 여성주의 운동과 함께 시간이 흘러오는 과정상에서 여성이 ‘피해를 받는 존재, 혹은 수동적 존재’로만 남아 있게 되는 오해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구도를 넘어서, 성폭력 사건의 발단이 가해자 개인이 너무 나빠서 일어난 게 아니라, 그러한 환경을 우리가 만들어 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차별의 문제는 여성이 가지고 있던 어떤 피해의 감정이나, 그 때 그 때 예스나 노라고 말 할 수 없었던 상황들, 또는 Yes가 Yes라, No가 No라고 여겨질 수 없었던 것들이 쌓여가는 과정상의 모든 것들인거죠"라고 강조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것이 아니다,
            유기적인 권리 차원에서 같이 풀어나가야 할 문제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해 다시금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 잠시 숨을 고르고 뒤를 돌아볼 때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지금의 페미니즘은 한계에 봉착했다.
페미니즘이 사회에 수용되는 단계에서 목에 걸린 가시 같은 무언가가 있어왔다. 그것은 뿌리 깊게 박혀버린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일 수도 있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현재 지향적 평화주의자들과 미래에 더 좋아질 거라는 미래 지향적 평화주의자들의 싸움일 수도 있다.

M씨의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아주머니'인 것 같다고 얘기하며, 페미니즘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다.

“저는 권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페미니즘 자체가 여성만의 문제라고 말 할 수 있는것인가 하는 거죠. 예를 들어 B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당연 C의 권리도 지켜지지 않을거라고 거거든요. 즉, 유기적으로 사람들이 뭉치지 못하면, 가장 약한 고리부터(예를 들어 비정규직인 여성들) 없어지기 시작하고, 그게 암세포 퍼지듯이 번져 나갈 거라는 겁니다.”


                                                       나놔 (cochon8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