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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학 안간다고 불안하진 않아요.


집단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내가 그랬고 내 친구가 그랬고 많은 고3이 그랬듯 수능을 치고 대학을 왔다. 삶의 기로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는 건 궤도에서 벗어나는 불안한 행동이었고 사실 다른 삶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다. 

재영은 이제 막 스물을 넘긴 인권운동사랑방(이하 사랑방)의 상임활동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면 궁금해 한다. 어떻게 인권활동가를 시작하게 됐냐는 말은 일을 시작한 7개월 전부터 계속 들어왔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누구나 그렇듯 그와의 인터뷰를 식상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삶의 기로에서 방점을 찍을 지금의 선택을 하게 한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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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이재영 상임활동가



“중고등학교를 다 대안학교에서 나왔어요. 중학교는 실상사 작은 학교, 고등학교는 간디자유학교.  대안학교 들어온 건 제 의지가 많이 작용했어요. 부모님도 사회적으로 당연한 게 있는데 그런 걸 깨고 대안학교를 보내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중학교 땐 도법스님이나 수경스님이 삼보일배하시는 거 보면서 환경, 생태운동에 관심이 생겼어요. 고등학교때는 인권과 평화 같은 수업 듣고 집회도 자주 나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 졸업을 하고, 주위 친구들은 대학으로 많이 갔지만 그는 대학을 선택하진 않았다.
불안하진 않았을까?


"뭐든 불안한 건 마찬가지죠.  어떤 사람들은 저한테 니가 대안학교라는 틀 속에 갇혀있었으니까 그걸 벗어나서 사회를 나오기 두려워서 그 비슷한 데로 온게 아니냐 , 사랑방을 대학 대신 온 것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하는데 사실 그러진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대학이 저한테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군대 연기 때문에 내년에 들어갈 생각은 하는데, 사실 대학에는 가고 싶은 과가 없더라고요. 원래 대학 뜻이 깊게 학문을 공부하는 곳인데 밖에서 볼때는 별로 그렇지 않은 거예요. 물론 그 안에서는 또 다르겠지만, 제가 잘 몰라서 함부로는 말 못하겠는데.. 그런 거 볼 때 전 돈 아깝다, 그거 말고도 내가 할 수 있는게 많을텐데 했어요. 그래서 사랑방에 왔고, 사랑방에 안왔어도 저는 대학안가고 아마 딴 걸 하고 있었을 거예요. "

원래 꿈은 꽃집이나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 그리고 밴드를 하는 것이란다. 그는 꽃집을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걸 하고 싶었지만 자금이 없으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단 푹 쉬었다.

“졸업하고 두달 동안 집에서 뒹굴거렸어요. 그때 CSI 시즌 1부터 7까지 싹 다 보면서 놀았어요. 그러다가 운동이라도 하자 싶어서 자전거 타고 여행을 갔는데 무작정. 그 때 돌아다니면서 농민들 만나면서 FTA 이야기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운동에 더 많은 의식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필 인권분야의 운동을 하게 된걸까.

“인권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들었던 건, 취약계층 있잖아요. 평소에 도시빈민, 철거민같은 사람들 보면서 우리랑 똑같이 살아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꾸 의식이 생기니까 사회주의도 모르면서 나름 그런 이론을 생각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인권은 참 어려워요. 권리담론이란 게 워낙 어려우니까. 그래서 누가 왜 인권운동하세요 그러면 그게 되게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워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내가 왜 하고 있는가. 마음이 가는대로 한 거 같아요.”

일찍부터 인권감수성이 많았고 하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겠지만 스무 살에 바로 부딪친 인권운동 세계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힘들어 죽겠죠. 아주.  전 늦잠 못자요. 새벽 3시까지 술마시고도 다음날 7시에 일어나서 출근해요. 
또 일단 다른 활동가들은 경험이란 게 있잖아요. 물론 저도 2,3년 있으면 경험은 생길테니까 그런 면에서는 크게 걱정안해요. 제일 힘들 때는 되게 무기력감을 느끼거나 안좋은 사태가 벌어져도 그냥 그려러니 하는 마음이 생길 때,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을 때가 가끔 생겨요. 그럴 땐 미치겠죠. 막 마음 추스르기도 어렵고. 그리고 진짜 매일매일 어려운게 생겨요."

그래도 힘든 운동사회에서 그를 즐겁게 일하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새로움이다.

“그런데 매일매일 새로운 게 생겨요. 빈민을 보면 아 빈민들의 인권생각하고 이랜드투쟁보면 노동자들의 노동삼권인권. 주거권에서 철거민들을 보면 살만한 집에서 왜 못살지. 건강권도 그렇고.  다 이렇게 사안을 닥치고 경험할 때마다 느끼죠. 난 저런것 때문에 한다 는 생각을 해요.
 
저는 되도록 되게 재밌게 생각하려고 해요. 안 좋은 터지면 심각해지기보다 재밌게 진보적인 인권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고민하죠.”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는다. 그가 살아가는 쉬운 공식이다. 재미가 없는데 죽어도 해야한다면 재밌게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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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랑방에서 주거권 활동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 그의 시각에서 본 우리나라 주거권은 어떨까.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어야 하죠.  제가 주거권에 대한 전망까진 아직 없고, 재산이 80억인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살만한 집에 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이지만. 

왜냐면 모든 사람에게 권리가 있다고는 하는데. 이런 부익부빈익빈이 세상에서 돈 많은 사람들한테는 권리가 있고 돈 없는 사람한테는 권리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말로는 모든 사람에 있다면서. 저 같은 사람은 부자의 권리는 얘기하지 않아요. 취약계층에 대한 권리를 많이 이야기해야지.
아, 아파트는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아파트는 수명이 한정돼 있어요. 4,50년 되면 생명이 없어져요. 그때 건축폐기물이 엄청 나와요. 지을 때도 환경공해 엄청 심하고, 정말 엄청엄청 소리밖에 안나오는데요. 잘못된 게 많은데 사람들이 편하니까 그냥 사는 거죠 "

또 그는 주거권을 넘어서서 사회공공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주거권도 사회권에 속하는데요, 교통이나 물이나 이런 문제들인 사회공공성에 관심이 많아요. 사회권이 인권이다는 걸 사람들이 잘 인식못하잖아요. 노력해서 사회공공성이 권리담론이란 걸 말하고 다녀야죠.”

그가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학생이 아니라 활동가로서 '사회'에 바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리라.

“ 그런데 전 사회, 사회 이런 말 되게 싫어해요. '너희들도 이제는 사회 나가야 한다.' 이런 말들.
남들이 저보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사회진출했다고 생각하는데, 전 사회진출했다고 생각안해요. 고등학교 졸업하면 당연히 환경이 바뀌겠죠. 그걸 굳이 사회라고 생각안하고 모든 건 큰 틀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음.. 베스킨라빈스같이 골라먹는 것처럼, 저 아이스크림은 저런 맛이구나 또 다른 아이스크림 찾아서 맛보고. 그런 것처럼 세상의 여러 모습에 부딪치면서 거기 적응하고, 문제점 발견하고 바꿔나가고 그런거요. "

요즘 20대가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게 먹고 사는 문제다. 그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돈이 없으면 힘들죠. 소박하게 사려고 해도 우리나라는 돈이 없으면 힘드니까. 저도 먹고 사는 걱정을 하긴 해요.  사람들도 너는 돈도 얼마 안벌면서 뭐하고 사냐고 하는데, 그래도 지금 저한테 그렇게 부족한 건 없어요. 앞으로도 부족하면 그때 그때 벌면 되는거고.
근데 ‘집’ 이란 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진짜 중요해요 주거권이.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7살때 부터 청약부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1순위일거예요. 3년만 열심히 일하면 보증금 4천주고 월 10만원주면서 살 수 있을거예요 근데 4천만원이 어딨어요. 못 들어가지. (웃음) "


다른 삶은 두렵지 않다. 아니 다른 삶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달려가긴 하지만 그것이 정석은 아니기 때문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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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활동해서 음악 좋아하고, 전시회 가거나 그렇게 표출해내는 예술 운동 좋아해요. 그래서 운동의 연장선으로 표출을 많이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게 돼요. 집회에서 틀에 잡힌 집단 발언하고 그런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쨌든 대중한테 알리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쉽게 다가가고 쉽게 이해하고 다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전 깃발같은 건 싫어해요.  빨간 띠 . 조끼 그런 것들도. 솔직히 그런 건 좀 탈피해야 돼요. 결국 그들만의 운동이 될 수 있으니까. 우리 너희 그들 이런 식으로 되면 안되잖아요 "

"제일 바라는 건.. 사랑방이 없어지는 것. 인권운동이 필요 없을 날이 와서. 하.. 그러려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일해야 하나? "  



오산이 기자(ymj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