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학

어느 '대딩'의 무미건조한 하루

7시 30분. 알람은 이미 30분 전부터 대차게 울려대고 있었다

이불 속에 누워서 나는 계속 고민했다. 일어날 것이냐, 말 것이냐. 머리는 감을 것이냐, 말 것이냐. 오늘마저 지각을 하게 된다면 나는 삼진아웃으로 재수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루 동안 떡 진 머리를 견딜 자신이 없어 나는 부랴부랴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감고 나오니 7시 45분, 남은 시간 10분. 엊그제 입었던 티셔츠와 어제 입었던 청바지와 매일같이 입고 다니는 코트를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8시. 잠조차 덜 깬, 비몽사몽의 여대생이 달팽이 껍질처럼 아늑한 집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또, 하루가 시작이다. 오늘 하루, 나는 행복할까?

느려터진 지하철, 답답하다

한 손엔 전공책이, 또 다른 한 손엔 우산으로, 손이 버겁다.

지하철 안에서의 40분은 가끔 견디기 힘들 만큼 지루하다. 게다가 이 작은 지하철 칸 하나하나에 사람들을 미친 듯이 밀어넣는 꼴이라니...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등에 얼굴을 묻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앞 열차와의 간격이 좁아, 서행운전하고 있사오니 양해바랍니다”

나는 문자로 이 어이없는 상황을 친구들에게 생중계한다. “오늘도 차가 막힌다”

배가 고픈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환승하여 갈아탄 버스에서 내린 한적한 캠퍼스는 마냥 춥기만 하다...

강의는 이미 시작됐고 출석도 이미 부른 것 같다. 교수님의 너그러운 웃음과 동기들의 안타까운 눈빛이 조용한 강의실 안을 가득 메운다. 그러고 보니 수업 프린트를 뽑아오지 않은 게 이제야 생각 난다. ‘지금이라도 뽑아올까,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것보다 그게 낫나?’ 하는 하기 싫은 고민과 갈등이 좁은 머릿속을 비집고 돌아다닌다.

1분, 2분이 지나도록 나는 그냥 앉아있다. 결국 공책 하나를 꺼내 미친 듯 필기를 한다. 시험 볼 때 필요한 것은 “난 교수님의 수업을 꽤 열심히 들었어요” 를 표시하는 센스다. 아무리 전공서를 잘 정리하고, 달달달 암기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애교가 답안지에 담겨 있지 않다면 진정 마음놓고 A+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배가 고프다. 창피한 일이지만 이런 배고픔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변방 3m 간격의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다. 능력은 아니지만, 창피한 일도 아닌데, 나는 무지 조마조마하다. 배가 고픈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불편한 학교, 떠나간 너네들은 행복할까?

배가 고팠던, 아니, 배만 고팠던 긴 수업이 끝났다. 복학생도 아닌데, 2년이 훌쩍 지나버린 학교는 무지 쓸쓸하다. 남자 놈들은 모두 군대를 갔고, 같이 있던 여자 놈들은 졸업한 것도 아닌데 벌써 제 갈 길 찾아 여기 저기로 수출되어가거나, 자진 수출시켜나갔다. 학교를 혼자 다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들 모두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나 혼자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불현 듯 든다. 그들이 휴학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사실, 중요해 보이지 않다. 학교라는 곳이 갖게 하는 불안감이란 여기서 발생한다. 나는 학교가 편하지만, 또 그만큼 학교가 불편하다. 나는 지금 행복할까? 떠나간 그들은 행복할까?

애초에 시간표를 짤 때 공강의 최소화로 전략적인 시간표를 짜는 것이 좋으나, 이것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더 많다. 오늘도 나는 몸에 좋다는 광합성을 위해 정겨운 캠퍼스를 거닐었다. 끝도 없이 거닐고 싶지만, 그러기엔 학교가 좀 소박하다. 날씨도 춥고, 더 이상 걸어다닐만한 여유조차 생기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서 빌린 책들을 반납하고, 또 여기 저기 헤메이며 이 책을 고르고, 저 책을 빗대어 가며, 가방 무게를 애써 늘리려 고심한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을 찾아봤지만, 아예 없는 책이거나, 이미 절찬 대여중이시다.

곧 수업이 시작할 터인데, 왠지 일어나기도 싫고, 밖에 나가기도 싫다

묘하게 일탈의 유혹이 또 다시 나를 흔들어댄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안절부절, 밖으로 몰아대는 것일까.


다 늦게 역마살이 낀 것 같기도 하다. 학교는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다. 그냥 단지 수업이 듣기 싫어서? 공부가 하기 싫어서? 도서관에 올 때마다 나는 그 동안 모르던 것들이 일순간 자신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것은 어떤 생각의 문제일 수도 있고, 단순한 사건, 역사의 한 귀퉁이 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너무 많다. 회의가 든다. 단순한 투정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시간이 너무 길었다.

6시. 일어난지 11시간 만에 나는 답답한 마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동아리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기도 했고 돌아오는 길에 인사동에 내려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도 했다. 오는 길에 시청역 근처 돌담길에서 나무 조각을 하고 계신 장애인 한 분을 보았다. 어둑어둑해지는 밤 거리에서 달빛 조명 하나 켜놓고, 조각을 하신다. 아저씨는 행복하실까?

추운 밤이다

최대한 많은 환승을 하면서 나는 집에 도착했다. 지독시리도 긴 하루였다. 내가 한 거라곤 거리를 이동하며 읽었던 책에 밑줄 몇 개를 그은 것 뿐. 다른 누군가는 토익 문제집을 몇 장 풀었겠지만, 나는 그것도 하지 않았다. 다시 고 3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아니,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일까지 장래희망이 뭔지 적어오세요”라는 숙제에 그녀는 아무것도 적어갈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꿈조차 적어 내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하루는 오늘도 이렇게 사치스럽게 시간을 써버렸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행복했을까? 내일 나는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