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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서울독립영화제

"할머니 고생하셨어요. 다음 세상에는 마음 편히 사세요"


서울독립영화제의 장편경쟁작인 문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할매꽃'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외가댁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영화는 제작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외가댁 가족사진



외할머니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알면 알수록 고통스럽고 모든 걸 다 이해하기엔 버거운 외가댁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한 세대의 아픔이다. 

감독은 말한다. "그냥 좋은 분으로만 알고 있던 외할머니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몰랐다"고.


외할머니의 큰 오빠는 친했던 사람에게 총살당하고 남동생은 일본에서 조총련활동을 하다 폐암으로 쓸쓸히 죽었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의 강력한 반대로 좌익활동을 접으면서 평생토록
외할머니를 때리고 괴롭혔다. 작은 아버지는 외할아버지 면회를 갔다가 경찰의 공포탄으로 정
신이상에 걸렸다. 집안은 자꾸 몰락했다. 외할머니는 그 모든 것들을 자기 탓이라 끌어안으며 한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사셨다. 아는 집안에 큰오빠가 총살당한 걸 알면서도 애써 티내지 않으려
했던 외할머니. 죽으려고 우물을 들여다 봤는데 거기에 자식들이 비춰서 차마 죽지 못했다던 외
할머니. 새벽이 되면 팔아버린 논밭을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선홍색 피를 뱉어내셨다던 외
할머니.


영화의 중간에 외할머니의 숨소리가 나즈막히 들린다. 외할머니의 삶은 곧 우리 전후세대의 삶인 것이다.
좌우익으로 나뉘어져 서로를 미워하며 죽여야 했고 무고한 사람들이 전쟁통에 희생됐다.
아직도 연좌제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외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신다. 외할머니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감독은 살아생전에 완성된 영
화를 보여드리지 못한 게 못내 안타깝다고 한다.

카메라는 얇은 숨을 내쉬는 할머니를 바라본다. 감독은 말한다.


"할머니 고생하셨어요. 다음 세상에는 마음 편히 사세요"



외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하나의 세대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감독의 나즈막한 외침 은 그 세대에 대한 지금 우리의 무관심과 그 때의 상처가 아직 이어지고 있는데도 어루만지지 못하는 우리들. 그 때의 잘못이 이 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는데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는 정치적이지만 그렇기에 아주 솔직하다. 그래서 오히려 이념마저도 넘어서는 근본적인 고민을 제공한다.  
어떻게 제도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제어할 수 있는지, 왜 우린 그렇게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반공교육을 받으면서 '왜'라는 질문조차 해보지 못했는지.
감독의 고민이 그대로 배어나와 관객에게 스며든다. 


아주 귀한 영화다.



오산이 기자(ymj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