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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서울독립영화제

재기발랄한 '연애이야기', <은하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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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하해방전선] 포스터

재미있다. 부사가 붙어야겠다. 가장 재미있다. 전제도 붙여야겠다. 지금까지 본 한국 독립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 윤성호 감독의 첫 장편영화 <은하해방전선>의 큰 미덕 중 하나는 재미로 보인다. <은하해방전선>은 말 많은 초짜 영화감독 영재가 애인과 헤어지면서 실어증에 걸리고, 영화 작업에서도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을 코믹하게 다루는 ‘연애이야기’다. 스스로를 ‘멜로가 되고 싶은 코미디’라고 지칭할 정도로 이 영화는 재기발랄하고, 수다스럽다.

<은하해방전선>의 은하, 는 영재와 헤어진 여자친구의 이름이다. '해방전선'이란 단어가, 민족이나 조국 같은 거창한 단어에 붙여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 영화의 제목은 웅변하고 있다. 헤어진 애인 ‘은하’에게 ‘해방’ 되고 싶은 영재를 그린 이 영화는 그러나 동시에 시대와 밀착해있다. 실어증에 걸린 영재는 가족병력을 묻는 의사에게 “사촌 중 조선일보 기자가 있다”라고 답하며, 은하와 영재의 대화 속에는 한-미FTA와 스크린쿼터 등의 사회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담론들을 감독이 영화 속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캐릭터의 개연성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라는 감독의 대답은 반갑다. 그런 맛깔스런 대사들은 결국 캐릭터들을 빛나게 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수사도 ‘지금, 여기’을 발랄하게 차용한다. “사랑은 황우석이야. 다들 누리고 싶지만 존재하지 않는 원천기술 같은 거.”

영화는 쉴 새 없이 환상과 현실을,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래서 관객들은 조금 헛갈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메멘토>같이 ‘해독’을 요구하는 작품은 아니다. 감독이 이곳 저곳에 흩뿌려 놓는 에피소드들을 짜 맞추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정서적 반응’만으로도 충분히 <은하해방전선>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독립영화를 즐겨 보는 이라면 더 풍부하게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불을 지펴라>, <나를 떠나지 말아요>로 인상에 남은 배우 유형근과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양해훈 감독도 작품에 출연해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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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의 한 장면


첫 장편이란 점에서 더욱, <은하해방전선>의 주인공인 초짜 영화감독 영재를, 실제 작품의 감독 윤성호와 분리해서 보기는 어렵다. 영재가 군인이었던 시절,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을 담은 장면은 그래서 호기심을 일게 만든다. 이등병인 영재에게 선임이 “너 꿈이 뭐야?”라고 묻는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에 선임은, 민중을 생각하는 영화를 만들라며 다그친다. 선임은 <제국>이라는 사회과학서적을 읽고 있는 중이다. 그 순간, 지하철에서 연주를 하며 돈을 구걸하는 노약자를 건장한 사내가 때리기 시작한다. 영재가 선임을 바라본다. 선임은 방금까지 읽던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때 흐르는 영재의 내레이션. “이런 것들을 잘 봐뒀다가 영화로 만들어야지.” 그가, 윤성호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