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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예대생들 뼈 빠지는 현실, 그냥 참는 이유

한 학기에 등록금 빼고 100만원?

L대 도예과에 다니고 있는 내 친구 S는, 어제의 야작에 이어, 오늘도 늦은 밤까지 작업을 마무리 져야 한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작품이 잘 나오지 않아, 이미 두어 개 갈아엎었다. 작품 하나 굽는데 드는 돈만 50만원, 괜스레 잊고 지냈던 등록금에 숨이 턱 막혀온다. 학기 끝날 때쯤 되니 다시 과제의 압박에 쌍코피가 터진다. 집에 들어가는 것도 귀찮고, 매일같이 작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주말에도 학교에 나오다보니, 심신이 지친다. 안 그래도 과제로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교수가 당연하다는 듯 방학 중에 한다는 스터디 얘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그 스터디 과제도 이번 학기 중에 끝내라는 졸도하실만한 충고 하나를 더 던져주고 지나간다.


도예과의 서른 남짓 안 되는 동기들끼리 보란 듯 경쟁의 기류가 감돌고, 몇 안 되는 교수들의 레이더망 안에서 그들은 불평 한마디 안 하고 하루하루를 거미줄 쳐 내듯 보내고 있다. 학기 초엔 그녀도 솔직히, 대학생활이 제법 낭만적이고 여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건 대학입시보다 더 심하다.


그래도 지금은 2학년이라 덜 한거라고 한다. 3학년 되면 적어도 한 학기 등록금에 기본 100만원은 더 든단다. 한 작품 하는데 하루에 돈이 5만원씩 나간 적도 있다. 포트폴리오도 한 과목당 하나씩 내야 되는데, 이거 만드는 것도 다 돈이다.

마음은 끌리는데 머리는 상상도 못해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투자를 감행하면서 학생들에게 보장되는 것은 무엇일까? S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불안하다고 한다. 그녀는 1학년 때 예상했던 것들과 달리 지금은 모든 게 불확실해 졌다고 얘기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S의 얘기를 들어보면, 분명 그녀는 남들보다 열심히, 그리고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은데, S는 “더 빨리 준비했어야 했다”는 한숨 섞인 말들을 내뱉는다.


그녀는 가끔 여느 휴학생들이 누리는 여유 있는 생활을 꿈꿔보기도 한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머리는 죄수에게 채워진 수갑마냥 그녀를 얽맨다. 그녀의 꿈은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것이다. 영어는 말 할 것도 없고, 제 2외국어에, 학점은 기본이고, 탁 까놓고 말하면 유학도 갔다 와야 한다. 물론 ‘필수’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순수 미술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 유학을 다녀와야 한다는 것은 사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이다. 실질적인 나이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재수도 했는데, 휴학까지 생각하기엔 현실이 너무 버겁다.

순수 미술 하고 싶지만 ...

당장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졸업하고 돈 벌어서 ‘도예 마을’ 하나 만들자는 얘기를 한다. 사실, 순수 도자예술을 하고 싶은 아이들이 많은데 현실은 당치도 않다.


그들을 제약하는 ‘현실’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22살이라는 나이가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 현실이다. 말 그대로. 세상에 모든 스물두 살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22살이 사실, 열에 여덟? 아니 아홉은 된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들의 삶이 잘 못됐다고 나는 결코 말 할 수 없다. ‘얘 너무 꿈이 큰 거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하면 할 말 없다. 내 친구가 꼭두각시처럼 어디에 끌려 다니며 꿈을 좇는 것도 아니며 이과로 수능 봤다가, 자기 의지대로 다시 1년 학원 다니고 공부해서 예대에 왔다. 힘든 과제 얘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기가 만든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다. 밀리고 겹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만 없다면 정말 즐거운 작업들일 거라고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말한다.

미대 등록금 보면 포기할 사람은 벌써 그만 뒀을걸...

그녀는 자기 전공을 살리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돈 벌어서 그 동안 부모님이 뒷받침해주셨던 것만 다 갚는 데만 해도 시간 꽤나 걸릴 거라고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들면 중간에 휴학하는 사람들도 꽤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란다. 그러면서 S가 하는 말이, “미대 입학등록금 500 넘는 거 보고 나면 포기할 애들은 벌써 포기하지 않았을까” 라고 얘기한다. 씁쓸하다.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데 그럼, 한국 도자공예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일까. 그것도 아니란다. 모두 외국인들이란다. 그러면서 그녀도 대학 입시부터 미술 공부라는 것이 대부분 정형화되어 있고,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 교육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학교에서 조금만 뒷받침을 해준다면 가마에서 작품 하나 굽는 것 정도는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한다. 나는 왜 그럼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냐고 묻자, ‘이렇게 소수의 학생들끼리 있는 구조에서는 교수한테 한 번 찍히면 되돌릴 수 없어서, 그냥 있는다’고 한다.
설령 누군가 한 명 총대 맨다고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