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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SKY 총학생회,최초 동시 비운동권 당선, 대학 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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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엠블렘



2008년 전국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대부분은 끝이 났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는 다른 해에 비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총학생회선거를 통해 현재의 20대를 돌아본다.

SKY, 처음으로 동시에 비운동권 성향 총학생회 당선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하지만 시간이 흘러 역사상 처음으로 세 개의 학교에서 동시에 반운동권 성향의 총학생회가 당선되었다. 서울대는 “실천가능” 선본이 투표율의 30%, 연세대는 “연세 36.5” 37.7%, 고려대는 무려 “고대공감대2008”선본이 60%의 지지를 각각 얻었다.

당선된 세 학교의 신임 총학생회는 학외활동 보다는 학내활동을 중시하고 학생들의 복지를 우선하겠다며 당선되었다. 이는 총학생회가 등록금 문제나 취업문제 등 무거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대, 성신여대 등 몇 학교와 단독선거로 치러진 곳을 제외하면 성대, 경희대, 중앙대, 외대 등 많은 곳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당선되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오늘, 내일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88만원세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20대에게 가혹한 상황과 물가상승률보다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등록금을 생각해보면 이상할 만한 일이다. 과거 80년대 소위 말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은 “민중의 벗이었던 대학생이 왜 그러느냐”라고 한탄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생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민중”, 노동자가 민중인가, 농민이 민중인가. 과거의 선배들은 민중으로 불리는 하위그룹보다 상위계층이었을는지 몰라도 이제 대학생은 “민중” 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됐다. “민중”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아버지는 봉급은 짜도, 안전한 직장이 있다. 우리의 어머니는 힘들게 살아도 살 집 한 칸은 있다. 그러나 대학생이라는 계층에게 쏘아대는 말들은 “너 언제 취직 할래?” “너 언제 인간 될래?” “그렇게 살아서 뭐라도 할 수 있겠어” 밖에 없다.

대선에서 일자리 ‘500만개 창출’, 총학생회장 후보들이 말하는 ‘등록금 인하’는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슈퍼맨 같은 말을 듣고 있을 여유가 없다. 아무리 경쟁이 심해도 주류의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5%의 로열그룹에 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쫒아서 하루를 산다.

막장으로 치닫는 총학생회 선거 파행

2008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선거파행이 되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대 왕산캠퍼스, 숙명여대, 동국대, 한성대 등 일반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선거가 확산되고 있다.

외대 왕산캠퍼스의 경우, 전 총학계열의 선본이 진보진영 선본에게 공개유세에서 육두문자를 남발을 하고, 11월 민중대회 참가했다는 것 하나로 폭력시위영상을 배포해 흑색비방을 해도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경고하나 주지 않았다.

숙명여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선관위는 임의대로 선거날짜를 조정하고, 한 선본이 전 총학생회 비판내용을 실은 것을 삭제 조치했다. 선관위는 '마지막 날까지 40%가 넘지 않으면 재선거를 한다'는 선거 시행세칙을 무시하고 중간 개표결과를 발표하면서 파행이 극에 달했다.    
 
동국대의 상황은 더욱 가관이다. 동국대 선관위원장은 2번 후보에게 경고를 주고 2번 후보가 이의제기를 하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상황이 반복해서 발생하면서 결국 2번 후보는 경고누적으로 자격을 박탈당했고 선관위원장의 독단적 행동에 거센 반발여론이 일자, 선관위원장과 관계된 1번 후보는 돌연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사퇴를 했다. 이후 선관위원장은 독단적으로 선거연기를 표명하고 학내에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선거운동이라는 것이 원래 치열하기 때문에 잦은 마찰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학내 총학생회 선거에서 민주주의를 완전히 무시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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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소크라테스와 배고픈 돼지




민주주의? 나와는 상관없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고 한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되자고 했던 가. 그러나 오히려 이 세상에는 배고픈 돼지와 배부른 소크라테스만이 존재할 뿐이다.

민주주의의 매커니즘이 작동하려면 모두가 무엇인가 빼앗기면 안 되는 것들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소유를 존중해 주어야 된다. 그리고 우리의 소유를 억압하거나 빼앗는 자가 있다면 그에 대해 강력히 저항해야 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진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를 억압하려는 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어떻게 억압당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없다. BBK의 이명박, 나라망친 노무현, 로비삼성, 누가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가.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42개의 2007년 총학생회장들이 이명박을 지지했다. 이영민이라는 백수가 UCC를 찍어 이명박을 공개 지지한다.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2012년이 되면 또 다시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이명박이 최소한의 떡고물을 우리에게 나눠줄 것이란 기대를 가지기 때문이다. 떡고물이건, 집 한 채건, 세상을 바꾸는 것이건, 배고픈 돼지에게 먹다 남은 음식쓰레기라도 준다면 그것이 최고다.

2002년이 마지막이었다.

2002년의 월드컵, 여중생사건, 대선은 20대를 열광(?)시켰다. 한국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 한국이 자랑스럽다는 것, 이 하나로 20대는 뭉쳤고 우리의 꿈은 실현됐다. 나와 너의 꿈을 말하던 시절. 그 때의 패기는 하늘을 치솟았고 그 날 만큼은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 우리는 하나였다.

공동체의 개념이 성립하려면 그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넘는 상위의 프레임이 구성되어야 한다. 취업과 등록금의 문제는 현실에서 누구나 다 아는 문제고, 2002년 애국심, 자존심처럼 공동체를 역동적이게 만드는 상위의 공감이 필요하다.  

이제 5년이 흘러, 대학에 공동체는 없다. 공동체로 대변되는 학생회에서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해결의 공약 대신 오히려 “우리 뭐라도 한번 해보자”라고 설파했으면 더 많은 지지를 받았을지 모른다. 우리를 다시 뛰게 만들 무엇인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학생회나 20대의 모습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을 것이 자명하다.

2007년, 12월 다시 한 번 패기와 열정으로 친구들의 체온을 느끼고 싶지만 대학은 황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