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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아이돌 가수에 올인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21살 대학생이다. 내 하루는 동방신기로 시작해서 동방신기로 끝난다.
난 사실 토이나 이승환, 김동률 같이 소위 뮤지션이라 불리는 가수들을 좋아했고,  동방신기 이외에 아이돌 가수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처음 동방신기를 봤을 때는 호감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잘생긴 외모에 나이도 비슷하고.내 나이에 연예인이 되어 돈도 많이 벌고 꿈을 이뤘다는 사실이 참 부러웠다.

그들의 겉모습에 끌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방신기의 노래를 들으면,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 이상의 감동이 느껴진다. 젊음에서 우러나오는 꿈에 대한 열정적인 모습이 동방신기에 끌리도록 만들었다. 자주 찾아서 보고 싶지만 대학생이라 동방신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좀 아쉽다. 1학년 1학기 때는 거의 매일 학교 일정이 있어서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티비나 라디오에 나온 것들을 다운로드 받아서 시간 날 때마다 봤고, 모두 소장했다.

아쉬운 한 학기를 보냈지만 여름방학이 되면서 행복한 나날들이 시작됐다. 여름방학이 동방신기의 활동시기와 겹치면서 시간만 나면 동방신기를 보러 다녔고, 개강한 후에는 주말에, 연말에 틈틈이 동방신기를 보러 다녔다.

정말 엄청나게 고생하기도 했다. 12월 31일 MBC 가요대축제를 보러 임진각에 갔는데 말 그대로 진짜 얼어 죽을 만큼 추웠던 적도 있고, 학교 동아리 사람들하고 안면도로 MT에 가서 밤새 술 마시고 놀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영상회를 보러 서울에 올라간 적도 있다.

준수오빠 아버님이 하시는 피자집에도 종종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연락도 주고받고, 생일날에는 팬들끼리 자축 행사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동방신기 팬들을 대상으로 2시간짜리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했는데, 최대 청취자 수를 넘길 정도로 많은 팬 분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기뻤다.

하지만 빠순이 소리도 많이 들었다. 빠순이라는 단어 자체도 어감 자체가 좋지 않은데, 난 20대라 더 안 좋은 종류의 빠순이로 분류되고는 한다. 빠순이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채 무분별하게 가수를 쫓아다니는 일부 광팬에 불과하다. 진정한 팬들은 그러지 않는다.

가수를 위해 애정 어린 비판도 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사무실이나 숙소 앞에서 얼쩡거리는 팬들은 팬 계에서도 비난의 대상이다. 팬들의 극단적인 모습들만 매스컴을 통해 비춰져서 아이돌 가수의 팬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게 굳어진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사람들이 아이돌 가수나 그 팬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돌 가수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성숙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린 나이부터 사회에 발을 디뎠고 게다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연예계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이룬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수를 사랑하는 팬들도 올바른 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개념 없는 팬들이 많긴 하다다. 그런 팬들 때문에 모든 팬들이 나쁘게 비춰지고 있는데 그냥 바람직한 모습으로 가수를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VS

지금 난 22살. 6,7년 전 난 소위 말하는 ‘빠순이’였다. 그때를 기억해보면 정말 빠순이의 시대였다.

[H.O.T. VS 젝스키스, S.E.S. VS 핑클]의 구도는 가요계를 넘어서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가수들의 이름을 딴 각종 빵도 나왔고, 가요 프로그램의 인기도 대단했다. 연말 가요대상은 정말 말 그대로 우리들의 축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참 어렸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홈페이지에서 살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눈 뜨면 컴퓨터를 켜서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설을 보고 가끔 만나서 어울려 놀기도 했다.팬들끼리 많이 친해져서 그만큼 가수를 더 많이 쫓아다닐 수 있던 것 같다.

몇 가지 기억을 해보면...

나는 서울 최남쪽(?)에 살았는데,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인천에서 콘서트를 해서 그 어린 나이에 인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길게 길게 줄을 서서 콘서트를 보고 집에 새벽에 들어왔다.

또 여의도에서 하는 공개방송을 보겠다고 새벽에 일어나 엄마 몰래 나와서 첫 차를 타고 방송국에 갔었다. 그 날이 마침 몇 년 만의 강추위라 방송국 앞에서 오들 오들 떨던 기억이 난다. 핸드폰 버튼을 눌러서 문자를 쳐도 글자가 잘 안 써지고, 너무 추워서 현수막으로 온 몸을 싸고 있기도 했다. 생일에는 청담동 숙소까지 찾아가서 하루 종일 기다렸다 생일파티를 하고, 평소에는 그 멤버 지인이 하는 카페에 밥 먹듯 찾아가기도 했다. 음반이 나오면 돈이 생기는 대로 음반을 사서 생일인 친구들에게 선물했고, 그 가수가 선전하는 음식을 먹고 물건을 구입했다.공연을 하던 중 멤버 한명이 실신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펑펑 울기도 했다.

그냥 내 일상이었다.

가수가 해체한 뒤에도 이러한 생활은 지속됐다. 해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연말 가요대상이 열리는 방송국 앞에서 풍선을 들고 죽치고 있기도 했고, 팬들끼리 서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에 대해 새벽 늦은 시간까지 수다 떨기도 했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던 내 생활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끝났다.
대학에는 참 새롭고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공개방송에 가서 가수를 보는 것보다, 9월에 하는 학교별 대항 경기를 선배, 후배, 동기들과 어울리는 것이 훨씬 더 재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공부에 치이는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어서 그런쪽으로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시간이 아깝거나 그렇지는 않다.
어찌됐든 좋은 추억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