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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부모등급제'-인수위 대학입시 자율화를 말한다


 수험생 사이에선 ‘하프로 대학간다’는 말이 있다. 공부 못하는 잘사는 집 자녀는 아무것도 못해도 하프 하나만 있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돈 많으면 대학갈 수 있다’는 논리를 비꼬는 것이다. 2002년도 수능을 치렀던 우리 학교 선배가 점수가 너무 떨어져 상심하다 모 장관 자녀가 위와 비슷한 사유로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얘길 듣고 화가나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었다.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우릴 이렇게 만든 장본인 누구는 돈으로 이렇게 쉽게 대학을 가느냐’고. 교육부는 이런 선배의 글을 보곤 우리 학교에 전화를 걸어 그 학생을 찾아내라고 닦달했었다. 학교에서도 그 선배를 색출해내지 못했지만, 원인제공자 교육부는 책임을 지긴 커녕 수험생의 이야기를 이렇게 밟아버리려 했다. 교육부가 만든 ‘이해찬 세대’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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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이해찬 세대들이 졸업한지 5년째. 그 동안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고 2008년도 수능에선 등급제가 실시되고, 내신반영이 강화되었다. 예비 08학번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실에 피바람이 불었다는 뉴스를 보곤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첫 중간고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두 달간 10명이 자살을 하고, 추모집회, 규탄집회가 한동안 계속 있었다. 실제 고등학교를 다니던 동생(07학번)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매 시험이 대입으로 향해 있어 필기를 빌려달라는 친구 앞에서 노트를 찢어버렸다는 어느 학생의 이야기, 중간고사기간동안 다섯 명 이상이 실신했다는 이야기. 한국의 고등학교는 더 이상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입시전쟁에서 학급의 친구를 같이 힘들어하는 전우가 아닌 서롤 밟고 올라서야하는 적군으로 만드는 현 교육은 심각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미친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 입시전쟁 속에서 학부모들은 더 나은 내신을 위해서, 같은 등급에서 논술이라도 더 나은 점수를 얻기 위해 더 나은 과외선생님, 더 나은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사교육을 통해 어떻게든 더 좋은 대학을 보내려고 하는 이 전쟁이 과연 이번에만 해당되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을까?

 
 2008년 수능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2일 발표된 인수위의 파격적인 결정은 입시전쟁에서 무한경쟁세대를 ‘학부모등급제’으로 몰고 가고도 충분한 것이었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학입시를 ▲수능/학생부 비율 대학자율▲수능과목 수 축소▲대학입시 전면 자율화, 이 3단계에 걸쳐 개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자사고 확충, 대학자율화 등이 이뤄지면 ‘이명박세대’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대학입시에 대한 규제를 교육부가 하지 않는다면 대학 내에서 수능의 비율을 높이거나 대학자체시험의 비율을 높이는 폐단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3불정책이 실행되는 현 정부에서도 주요대학들이 이를 수능·내신반영비율을 지키지 않았는데, 이를 대학의 자율로 맡기게 되면 ‘본고사 부활’은 당연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교과서에 충실해선 절대 풀 수 없는 대학시험 문제들을 풀기 위해 학생들은 사설학원, 고액과외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입시방향과 문제 출제가 각 대학마다 다르게 이뤄진다면 대학에 맞춰서 입시를 따로 준비해야하는 부담감까지 생기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서민가정에서 대학보내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가 될지도 모른다.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부모의 능력에 따라 아이들의 대학이 결정되는 사회가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을 자책하게 만들지 걱정이 된다.


하프로 대학가는 얄미운 재벌 자녀보다 이제 더 무서운 세상이 찾아오게 될지 모른다. 하프를 살 정도의 능력이 안되는 집에선 아예 고등교육 이상을 꿈꾸는 것은 정말 ‘꿈’이 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이 만들 교육세상에선 있는 집 자식들만 예쁘게 공부하는 그림만 그려져 있는 듯 하여 이해찬2세대로서 심히 불쾌함을 감출 수 없다.




정윤정 기자(
babym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