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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학 내 인간관계는 학부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20개 대학이 올 해부터 전면적 혹은 부분적인 학부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학부제의 좋은 취지들을 기대하고 시행된 제도라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크고 작은 학부제의 모순들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학부제의 가장 큰 모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학부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생들의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다. 

학부제는 복학생과 재학생들을 이어 줄 매개체가 없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재학중인 배혁씨(23)는 문과대학 국제어문학부에 ‘학부제’로 입학했다.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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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영문학과 배혁씨(23)

배혁씨가 입학할 때 문과대학의 총 정원은 천 명이 훨씬 넘었다. 두 개 학부(인문학부와 국제어문학부)로 나뉘어 지긴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어떠한 소속감도 느낄 수 없었다. 학부 안에 8개의 학과가 있지만 학부제 특성상 수시생을 제외하고는 ‘학부’라는 소속만을 갖게 된다. 다만, 1학년 땐 새터 때 전공의 ‘명칭’만을 따온 ‘반’이라는 개념으로 전체 정원을 나눠 준다. 학생들은 랜덤으로 이 8개의 ‘반’에 배정될 뿐이다.
 하지만, 이 ‘반’은 2학년부터 선택해야 하는 ‘전공학과’와는 전혀 무관한 수 많은 학생들의 ‘분리’에 불과하다.

 배혁씨는 학기 초의 활발했던 학교 분위기가 2학기 때까지 지속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반’이라는 분리가 공통된 전공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복학생과 새내기, 혹은 재학생들을 연결시켜 줄 매개체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학부제에서 ‘같은 과’라는 것은 그냥 같은 ‘수업’을 듣는 것일 뿐이며, 정작 같은 학과 수업을 듣는 ‘전공생’들간의 교류는 전혀 없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반’ 동기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스템의 한계가 그 반 역시도 ‘하나’로 묶여지기가 힘들다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의 전제는 ‘학과제’의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현재 학부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절실하다고 털어놨다.

학과제는 교수님이 아니라 동기들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렇다면 반대로 학과제는 어떨까? 배혁씨가 고민했던 ‘학부제’의 문제점이 ‘학과제’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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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이지혜씨(23)

국민대학교 이지혜씨(23)가 재학중인 시각디자인학과는 교외 오티와 1학년 전공 필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활동이 과 안에서만 이루어 진다. 동기들끼리는 물론이고, 선배들도 특별한 노력 없이 쉽게 친해진다. 학과 특성상 개인과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잘 모르면 서로 교류하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개인 과제면 서로 경쟁이 심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취업할 때 제일 중요한 건 포트폴리오나 면접 같은 실질적인 성과들이지, 학점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경쟁적인 분위기는 교양 시간에 더 많이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과에서는 학생들의 과제들을 모두 전시해 놓고 동기들과 교수가 함께 평가를 진행한다. ‘
교육의 목적은 훌륭한 스승한테 배우는 게 아니라, 동시대의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또 다시 학과제 안에서는 학부제에서 느끼기 어려운 연대의식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걸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솔직히 1학년 때 고학번 선배들은 그런 게(연대감) 정말 있었던 것 같다. 과 내 동아리 같은 경우도 큰 행사가 열릴 때마다  함께 준비하고, 그만큼 결과도 좋았는데,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그런 활동들이 뜸해졌다. 사실, 이번에 졸업앨범과 관련해서 ‘조형대 만의 졸업앨범을 한 번 만들어보자'는 괜찮은 제안이 나왔었는데, 별 진척 없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인간관계는 학부제라는 제도적 장치의 한계에 불과한 걸까?

학부제의 기본 취지는 1학년들에게 더욱 다양한 학문을 접하게 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보다 신중한 전공의 선택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부제도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학생들은 지금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것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배혁씨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선후배나 동기들간에 보이지 않는 벽들은 대부분의 학부제도 내 학생들이 수긍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지혜씨와의 인터뷰에서 간간히 느꼈던 것처럼 이것이 과연 ‘학부제’라는 제도 안에서만 드러나는 한계일까 라는 의문 역시도 지울 수 없다. 다음은 요즘 대학생의 모습들에 대한 지혜씨의 생각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현재 대학가의 모습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시기가 아닐까?

“‘팽배한 개인주의’는 말 그대로 전체적인 추세라고 생각한다. 공동체에 대한 개념 자체도 약해졌고, 요즘 동아리 신입생 수도 많이 줄어들고 있지 않나. 그래서 교수님들 역시 “요즘 학생들은 시키는 건 다 잘 해 오는데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단체 행동이라는 게 어떤 결과가 당장 눈 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안 해도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생각이 좀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