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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너 능력껏 알아서 하세요"

      섞이지 않는 우리, 서로 짝사랑만 하다 떠나는 대딩들.


#M
의 작은 핸드폰
- 집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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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이었던 친구들을 모두 뒤로 하고, 나는 오늘도 혼자 버스에 올라 탄다. 이어폰을 꽂고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가방 앞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 진동 소리를 제법 애가 타게 기다리는 것 같다. 오랜 친구인 누군가가 문자를 보내고, 오늘 우연히 마주쳤던 후배 중 하나가 시답잖은 말장난을 걸어올 것만 같다. 사람들과 나눈 불편한 대화나 껄끄러운 시선들을 주제 넘은 참견 같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정작 이 작은 핸드폰으로 날아들 메시지 하나에 나는 기뻐하고, 슬퍼하고, 또 가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

 


#J
가 가진 2백 개의 전화번호 - 오늘도 나는 열 두 시간 동안 서서셀 수 도 없는 츄리닝들을 세트로 팔아댔다. 그 중 X같은 손님 하나 잘 못 만나 열 댓 번도 더 갈아 입히고 벗겨 드린 결과 디자인이 죄 다 마음에 안 든다는 총평과 함께여긴 이래서 안 돼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 기분도 뭐 같고, 아무나 불러 술이라도 마시고 싶었다. 핸드폰 전화번호부엔 어찌 생겨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지인들의 전화번호가 200개도 넘게 저장돼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번호들을 밑으로 다 긁어 내릴 때까지 답답한 속을 토해낼 곳은 정작 다섯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K대 학생에, 과내 학회 회원이고, 어느 동아리의 나름 성실한 팀원이며, MS라는 소규모 모임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지금 상황은 대략  그래서 어쩌라고 . 200개의 찬란한 전화번호부가 무색하고 무안하고 부질없는 오늘, 영락 없이 혼자만의 몫이 되어버린 푸념들만 소리 없이 쌓여간다..

 


#S
의 낯 선 목구멍
- 버스 안, 혼란한 머리 속. 나는 얼마 전 친한 친구 B의 여친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과, 역시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P 3년 간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 선배 S가 알바에 미쳐 사는 이유가 등록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스터디 때문에 종로로 가는 버스 안이고, 창문 밖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상이 짜증나 못살겠다며,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앉아 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차가 밀려 짜증이 났고, 동시에 나는 집에서 용돈까지 받아 쓰는 주제에, 저 무리들 속에 섞여있지 않은 내가 괜히 낯 설어 나오지도 않는 마른 침들을 모아 애써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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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우리에게 개인주의가 만연한 20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린 어린 시절부터, 꽤 낭만적인 대학생의 모습들을 꿈 꿔 왔다. 친구와 함께 과제를 하고, 밤 늦도록 토론도 하며, 때론 고차원적인(뭔가 사회적인) 정의를 위해 거리로 나와 당당히 뭉칠 줄도 아는 그런 대학생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어떠한가. 혼자 있는 게 좋아, 10분 먼저 버스에 오르는 M은 늘 핸드폰을 손에 놓지 못한 채 누군가를 기다린다. 200개의 전화번호를 뿌듯하게 바라보곤 했던 J. 하지만 그는 힘들어도 하소연 할 때가 없다.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S, 그녀의 행복은 어차피 대학생 때는 누릴 수 없는 것이기에 높아만 지는 등록금이 야속해도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린 각자의 방 안에서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돈을 투자했던 한 사람만이 겨우 평범이란 이름을 얻는다.


어쨌거나 결론은 늘- 너 알아서 능력껏 하세요 . 상황이 이 지경인데 어른들은 우릴 계속 병적인 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고, 암만 봐도 우린 이것을개인주의라 인정하고 싶진 않고, 홧김에 몇몇은 그래, 나 개인주의다, 당신들이 보태준 거 있냐라며 스스로를 비아냥거리기도 한다.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게 개인주의라 해도 어떠리오.’ 라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