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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진보/보수가 아닌 변화의 패러다임을 원한다

진보/보수가 아닌 변화의 패러다임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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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은 끝이 났다. 투표결과를 두고 많은 언론에서 20대가 보수화됐다고 말한다. 이번 선거에서 20대의 53%가 한나라당을 지지했으니 투표성향을 과거와 비교해 보면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과연 20대가 그런지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보기로 했다.

20대가 보수화됐다?

“글쎄요. 전 진보/보수 관심이 없는데요”

 ‘88만원세대가 부자를 찍는다’ 혹은 ‘20대 우향우’ 라는 기사제목들을 여러 곳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게 되면서 그 타격을 20대가 고스란히 받게 됐다. 그 결과 20대는 현실 중심적으로 실리를 바탕에 두고 판단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제적 요인들이 20대를 보수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2002년 까지 20대를 칭하는 단어들은 x세대, n세대, p세대 등 다양한 마케팅 용어였다. 하지만 2008년, 20대는 88만원세대라고 불리는 경제적 용어로 대변되고 있다. 그만큼 젊은 세대의 구매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세대적 지위도 낮아졌다.

  일본의 '버블 세대' 유럽의 '1천유로 세대', 미국의 '빈털터리 세대'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훨씬 빠르고 훨씬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학 5년차, 등록금 1000만원, 백수 305만 명, 20대 노후준비’ 사실 이런 상황에 처해진 세대는 전무했다. 그러다보니 자신과 관계된 모든 문제를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가는 취업5종 세트의 길을 가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위기감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등록금이 조금이라도 낮아진다면 기여 입학제를 받아드릴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김현진(성공회대, 2학년)씨는 “그렇게 된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찬성하겠다” 며 비판적 찬성을 했다. 또 삼성 이건희 회장 구속여부에 대해서도 오동현(고려대, 1학년)씨는 “재벌경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검찰이 봐주고 있는 것, 다 알지만 (이건희 회장을)구속하면 삼성을 지탱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난 1월,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질문에 압도적으로 반대(81.4%)를 했고 재벌에 대한 규제에 대해 절반 이상(56.3%)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우선해야 한다는 대답(52%)이 소득분배를 우선해야 한다(44%)는 대답을 앞섰다.

기여 입학제를 부당하다고 생각하나 그것으로 자신의 상황이 좀 나아지면 받아드릴수 있다. 재벌경영이 부당하나 삼성이 망하면 자신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것,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나 경제성장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고 있다. 과거 진보/보수의 논리구도에서 성립이 되지 않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이나 정당을 보고 투표하지 않는다.

정치적 선택의 기준도 과거와는 다르게 아이러니 한 상황들이 발생한다. 2002년 노무현 후보를 20대의 62.1%(KBS)가 지지했다. 5년 뒤 투표율은 10%이상 떨어졌지만 20대의 42.5%(SBS)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2008년 투표율은 역대 최악 19%를 기록하며 53.1%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등록금 공약을 핵심적으로 들고 나왔지만 20대는 야당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지율만 보면 5년 전 노무현, 열린우리당을 찍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명박,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다. 웬만해서 40대 이상의 경우, 자신의 지지를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20대들에게서 이런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

미국의 경우, 'Believe in Change' 의 구호를 든 버락 오마마에 10대와 20대들은 열광한다. 워싱터포스트는 최초 흑인 대통령에 도전하는 오바마가 미국을 인종 간 장벽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이끌고 있으며,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통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바마가 주는 변화의 에너지에 심취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이명박, 오바마에 대한 지지는 기존 정책과 이념의 대한 지지보다는 인물에 대한 지지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수성가형의 인물이고 거침없는 도전과 변화의 메시지를 가진 인물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하는 문지용(경희대, 1학년)씨는 “정당보다는 인물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진보/보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당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 있게 자신의 행동을 펼치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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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패러다임을 넘어 ‘변화’로

IMF이후 지난 10년 동안 20대는 억눌려왔고 사회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88만원세대란 단어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동시에 스탠다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의 선택을 하게 될 때, 자신이 고립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이 두 가지 속성 때문에 20대는 현실의 문제에 부딪쳤을 때 실리적, 안정적 판단을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사회에 대한 비전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나은 이상적 사회를 원한다.

  20대가 현실문제에 대해서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야당이 150만원 등록금 공약을 걸어도, 취업문제 해결 공약을 말해도 “해결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치를 선택해도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든 진보든 변화를 위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20대는 자기가 닮고 싶은 이상적 인물과 대입시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변화의 선구자’에 대한 ‘개인의 투영’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되는 것이다.

과거 노무현에 비해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을 투표율과 함께 비교하면, 이명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20대가 보수화 됐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20대 성향으로 나타나는 결과의 핵심은 지지율이 아니라 투표율이며. 정당이 아니라 인물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변화의 정치를 했다면 상황을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견제해야할 야당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설명했고 민주노동당 역시 '서민정당' 이라는 정체성만을 피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율 19%가 보여주듯 다수 20대가 투표를 외면한 상황에 작년 대선의 이명박 지지층이 자연스레 투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0대가 원하는 '변화'의 열망은 정당이나 정책으로 풀어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직관이며, 변화의 표상인 인물과 결합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다.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한 18대 총선이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우리의 답답한 현실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보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보수화, 개인화라는 단어로 20대를 무지한 계층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