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룰렛게임 ‘FTA’


어제 오후 2시 ‘한EU FTA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위해 30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같은 시각 신라호텔에는 한EU FTA 4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취재를 위해 시위 현장으로 달려가는 길, 동국대 입구역 주변에는 이미 경찰들이 포진해 있었다. ‘한EU FTA저지를 위한 결의대회’가 혹시나 협상에 피해가 갈까 우려했던 것일까.
지하철 역에서부터 계단에 빽빽이 앉아 있는 경찰들, 이내 지상으로 올라가자 전경차들은 시선의 너머까지 줄지어 서있었다.

하지만 시위규모는 생각보다 소규모였고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신라호텔까지 FTA에 대한 반대목소리를 전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장에는 한국낙농육우협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뿐 아니라 이랜드 뉴코아 비정규직 노조들도 연대하기 위해 참석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EU FTA는 지난 5월 서울에서 1차 협상을, 7월 2차 협상에서는 서로의 의중을 떠보는 탐색전을 했다. 그리고 지난 달 17일부터 닷새간 EU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3차 협상이 진행되어 본격적인 주고받기 식 절충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15일 4차 협상이 서울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EU FTA 각 대표 /출처 뉴시스/


한미 FTA 반대를 위해 고단했을 시간들을 위로받기도 전에 한EU FTA 반대를 위해 나선 이들이 또 다시 정부를 상대로 메아리 없는 고함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EU FTA 협상이 벌써 4차를 맞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의 영역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한EU FTA 저지 범국민 대회에서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은 “한EU FTA 협상의 김한수 대표는 유럽에서 협장의 제의한 것이 오천년 만의 기회라며 자신의 공무원 생활 30년을 걸겠다, 역사에 책임을 지겠다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FTA를 저지하러 직접 브뤼셀에 갔을 때 EU대표 측은 한국정부가 협장을 하자고 사정에서 우리는 응한 것 뿐이라는 말을 해서 너무 부끄러웠다” 고 말했다.

브뤼셀에서 벌어진 3차 협상에서 한국낙농육우협회와 양돈협회 등으로 구성된 농민유럽원정투쟁단 30여 명은 협상기간 동안 협상장 부근에서 농축산 시장 개방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이들이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에 이어 또 다시 졸속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보다도 국내총생산이 더 높은 경제적 규모를 가진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연말까지 끝내겠다는 오만한 발언을 했다” 며 “노동자 농민들은 지금 FTA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저들은 지금 안락한 쇼파에 앉아서 협상을 하고 있는 꼴을 볼 수가 없다.” 고 발언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EU FTA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째는, 사회 공공성이 파괴된다 는 것이고 둘째는 농축산업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우선, 한EU FTA를 통해서 국민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물과 전기와 같은 공공서비스 부문이 민영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말숙 전공노 부위원장은 "글로벌 상수도 서비스 10대 회사 중 대부분이 유럽에 있다"며 상수도 사업이 개방된다면 상수도 값이 10~20배 오르는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곧 서민 생활의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기초생활이 계속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다음으로 농축산업의 붕괴다. 한 EU FTA를 통해서 돼지고기,닭,낙농품 시장이 개방될 예정이다.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경우 EU가 매우 중시여기는 농산품 중 하나이다.

한EU FTA 저지본부는 성명서를 통해 “94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이미 거의 모든 유제품이 개방되어 4만호에 달하던 낙농농가수가 현재는 8천호에 미치지 않고 있고, 수입유제품의 범람으로 인해 우리 낙농가들은 생산제한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유럽정부가 농가에 주는 보조금이다.

유럽연합은 다른 지역의 축산품 가격이 낮아져 수출이 어려워지면 그만큼 유럽 축산농가에 수출보조금을 줘서 수출가격을 낮출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농업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EU와 관세없이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낙농민들은 최소한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든 뒤 시장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돈협회 김도한 회장은 ‘한국 양돈을 죽이려 한다. 이번 대선과 총선을 통해 FTA 찬성하는 정치인들을 심판하겠다.” 고 강력히 주장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빌미로 ‘돈’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농업을 공산품과 같이 취급하여 농업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그들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낙농육우협회 이승호 회장


결의대회의 마지막 즈음에 한국낙농육우협의 이승호 회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안산에서 급히 왔다며 말을 꺼낸 회장은 “한미 FTA 한EU FTA 반대보다 더 시급한 상황이 일어났다.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저희 낙농하는 사람들은 차규한 우유를 실어나르지 않으면 그냥 다 버려야 한다. 이제 한EU FTA가 아니라 지금 당장 화물연대파업현장으로 가야 한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순식간에 집회 분위기는 어수선해졌고 철수하고 빨리 가자는 회장의 말에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낙농가들에게서 한국낙농업가들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FTA 열풍이 정신없이 몰아치고 있다. 정부 측에서는 그것을 적극 환영이라며 마음껏 즐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정작 직접 삶과 맞닿아 있는 서민들의 생각은 그렇지 못하나 보다. 전국여성농민 회장의 말처럼 ‘한국은 FTA 천국인가 봅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에서 FTA 자체에 대한 사유가 없다는 것이다. FTA가 현 시대에 가지는 의미를 고민하기도 전에 한미FTA로 한EU FTA로 또 한중FTA로 몰아붙이니 정신이 없다. 또 정부가 한다고 할 때마다 한 켠에서는 목숨을 내놓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찰로 봉쇄해서 눈 가리려 하는 비이성적인 대응만을 보일 뿐이다. 언제까지 모든 정책에 있어 반대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막무가내로 진행할 것인가.



오산이 기자(ymj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