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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지 말아야 할 것들, 도시를 기록하다


도시는 항상 공사중이다. 도시 곳곳에서 부서지고 재건되고 또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특히 개발도상국을 겪으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도시화된 우리나라로서는 더한 일이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부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도시 곳곳의 많은 건물과 집을 부수면서 단순히 건물을 부수는 것 이상의 소중한 가치들도 함께 함몰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 단순히 높고 세련된 건물들이 들어선다는 기대만 앞섰던 건 아닌지 되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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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여기 굉장히 소중한 작업이 있다. 바로 ‘문화우리’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Cityscape Trust , 도시경관기록보존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급변하는 도시경관과 일상의 풍경을 기록하여, 오래되어 낡았지만 의미있는 지역고유의 장소성과 가치를 발굴하고 알리는 도시재생운동이다. 그래서 사라져 가는 재개발 지역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를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해 아현동을 처음으로 시작된 이 작업은 올해에 교남, 신월, 철산동의 재개발 지역을 기록했는데 현재 서대문에서는 ‘교남동’의 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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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역탐구게시판'이다.이제 곧 부서질 동네의 규모나 역사에 대해 기록해뒀다.



교남동은 서울시 종로구 평동 164번지 일대로 200,000 제곱미터 크기다.
조선시대 경기감영이 있던 자리에 서대문 적십자 병원이 들어섰다.
이후 구한말 외교의 축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옮겨지면서 변화했던 외주도 일대도 쇠락하게된다. 그리고 서서히 잊혀지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른다. 그리하여 교남동 일대는 서울성곽,경희궁터,기상청 경교장 등 조선시대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적지않은 도시한옥을 간직하고 있는 서울에서도 몇 안되는 동네 중 하나가 됐다.
의수로에서 기상청 방향으로 난 구릉지는 높고 가파른 계단과 층층이 쌓인 집들을 만들어 내었으며 교남동이라는 이름을 유래하게 했던 물길의 흔적이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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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재개발에 반대하기 위한 캠페인인가? 이에 대해 김아영 팀장은 그러한 접근은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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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우리'의 책임연구원 김아영씨



가끔 ‘그럼 재개발에 반대하는 사업이냐’라고 묻는 경우도 있는데 단순히 재개발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다만 ‘도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주거, 공간을 얘기할 때 집값, 재개발 말고 추억이나 생활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럼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겐 근현대자료가 참 귀중하다. 그때의 풍경이 지금은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단 다 부수고 새로 만들었으니까. 외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옛 것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것을 어떻게 공존시킬까 매번 고민한다. 도시화되는 것에만 너무 급한 우리들이 , 층마다 켜켜이 쌓여있는 예전의 것들을 없애버리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시된 교남동의 사진들을 떼어가도 된다고 하는데요, 저도 몇 장 떼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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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면양말 위에 고이 얹어진 따뜻한 사진들



'직접 가보자, 주위의 따뜻한 풍경을 찾아'


서대문역의 3,4번 출구로 나가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교남동이다. 전시된 작품을 보자 이제 곧 사라질 동네의 풍경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얼마 남지 않은 카메라 배터리에 조마조마하며 서둘러 교남동으로 잰걸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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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고즈넉한 동네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눈빛이 이젠 그곳의 건물, 사람, 지나다니는 개 하나 하나에 애정을 담뿍 담을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기분이었다.  매 순간 스틸사진을 찍어 담아두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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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자꾸 걷다보니 확실히 낡은 느낌은 많이 든다. 몇 발자국만 나가면 높다란 건물이 들어선 거리이기에 그곳과 단절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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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영화에만 나올 것 같은 소박한 세탁소다. 안을 흘깃 보니 흰 머리의 할아버지가 열심히 다리미질을 하고 계신다. 용기 내어 슬쩍 불러봤다. 오래도록 이 동네에 사셨을 거란 생각에, 과연 사라질 이 동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올해 연세가 68이신 장창호 할아버지다.


“이 곳은 예부터 야당 지지자들이 많았어. 그래서 오래도록 제대로 발전을 못했지. 이곳도 처음 재개발이 되는게 아니라 몇 번의 재개발을 거치긴 한거야. 그래도 대통령이 자기들 지지 안한 사람한테 크게 지원하겠어? 이 곳은 가난한 선비같은 동네야. 꽤 많은 인재들도 있어서 여당에 대해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여기도 양극화가 심해. 낙후된 동네긴 한데 저쪽에 큰 빌딩가진 사람이랑 그냥 여기 낡은 집한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랑 공존하고 있어.”

오랜 다리미질에 심심하셨는지 길고 긴 이야기를 한참 풀어내신다. 마치 잠들기 전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다.

“우리 같이 늙은 사람은 사실 발전된다는 게 별로다.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낫지. 하지만 후세를 위해서는 이 곳도 발전해야 해. ” “그런데 자꾸 발전될수록 분산되고 복집해지는 느낌은 들어. 그냥 다들 덜 갖고 있으면 잘 합치는데 발전할수록 잘 사는 사람 덜 가진 사람 차이는 더 나니까. 그래서 이 곳 자꾸 발전되면 사는 건 더 복잡해지것지 ”

유수처럼 흘리시는 말들이 곱씹어보면 오래 되새겨볼 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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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도 만나고 오랜만에 좁은 골목길과 길게 이어진 계단도 걸어 보았다. 어스름하게 해가 지면서 붉어가는 공기에마저 추억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이 공간들이 재개발되고 사라지겠지만 이 곳의 추억은 누군가에 의해 기억될 것이고 또 새롭게 생긴 공간에서는 새로운 추억들이 만들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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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 하면 어느새 집값이 얼마니 땅값이 얼마니 하는 이야기들로만 채워지는 것 같다. 도시에 대해 어떤 행복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했을 때 떠오르는 것이 없자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상력조차 말라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도시를 단순히 ‘개발’의 주체만이 아닌 역사나 이웃, 자연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체로 만들 때 도시를 삭막하거나 팍팍하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 것이다.


퍽퍽한 도시를 촉촉하게 하고 싶다면, 이 전시회를 찾아가 보자. 이런 소중한 작업들에 감동을 받고 우리 도시를 좀 더 따뜻하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감수성을 길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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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문화연대



오산이 기자(ymj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