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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도 "생활의 달인"이다

채널 돌리기 귀찮아 제대로 본  '생활의 달인' ? 뭔가 다르다?
 

지난 토요일, 집에 앉아 하릴없이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S*S에서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가 하고 있더군요. 물론 전에도 몇 번 본적이 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진득허니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보게된 건 처음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엔 ‘생활의 달인’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뭐 저런 걸 가지고 달인이래? 몇 년 일하다보면 자기 일에 그렇게 요령생기고 능숙해지는거 당연한거 아니야?’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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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스도 그리 특별한게 아니었거든요. 예를 들면, 설거지를 매우 빨리 잘한다던가, 다림질을 요령있게 슥슥 잘한다던가 하는... 아무튼 뭐 이런 식으로 ‘생활의 달인’은 어떤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그 일을 엄청 빨리 한다거나, 엄청 많이 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을 많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끝엔 프로그램에서 그와 연관되는 도전과제를 내주고, 주인공들은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식의 일관된 스토리를 갖고 잊죠.


 
30년 동안 종이와 닭발만 만진 손,
                         울고싶어도 울 수 없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


물론 이번에 제가 보게 된 방영분도 이전의 레파토리에서 크게 벗어난게 없었어요.

제가 보게 된  방영분에서는 달력 제작 공장에서 여러 종류의 달력을 만드는, 일명 '달력의 달인'이 소개되었습니다. 탁상용 달력의 지지대를 접는 것부터 시작해서 펀치기계에 종이를 맞춰 구멍을 뚫는 일, 종이 자르는 기계를 이용하여 일정 크기와 모양으로 종이를 자르는 일 등 직접 달력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더군요.

 

여기까진 보는데 평소와 별로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카메라가 이 아저씨의 손을 비춰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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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손

아저씨의 손은 성한 데 하나 없이 베이고 갈라져서 온통 상처 투성이었죠.

그 순간 제 가슴에서 뭔가 울컥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어느 유명한 발레리나의 발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해왔던 것처럼, 그 아저씨의 손도 저게 과연 손인가 싶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그게 흉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가슴이 시려오더군요.



VJ가 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없으세요?” 하구요. 그랬더니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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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미안하죠. 항상...... 같이 놀아주질 못하니까. 그래도 뭐, 잘 커주고 있으니까... ... 어쩔 수 없는 거죠. 가난은 내 세대에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절실하니까... 가난이 훈장은 아니잖아요.”

'이 방송 보고 우리 아버지 가난한가보다 하고 걱정하면 안되는데' 하면서 말을 흐리시던 아저씨는 그새 눈에 고인 눈물을 멋쩍게 닦아 내셨습니다.
 

공장에서 하루 두 시간만 주무시면서 일을 하신다는 아저씨가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니까 정말 마음이 아프더군요. 지방에 계신 부모님 생각도 나구요.

 

이 날 방송에는 달력 아저씨 외에 청계천에서 닭발을 파시는 아주머니도 나오셨습니다. 아주머니는 27년 째 가게에서 닭발을 다듬어 오셨다고 합니다. 방금 이 말을 듣고 좀  웃음이 나오지 않으셨나요? 저는 처음에 닭발을 다듬는 달인? 하면서 좀 의아해 했거든요.  물론 방송에서는 닭발을 다듬는 그 화려한 가위질에 포커스를 맞췄죠.
 

하지만 여기서도 이 아주머니의 고단한 삶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통해 전달됩니다.
추석과 설날 빼고 쉬어본적이 없다는 아주머니는 산후조리 때는 쉬지 않으셨냐는 VJ의 물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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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 해본 적도 없어요. 만삭일 때도 하루 종일 장사하면서 (일했어요). 우리 아기, 그 막 낳은 핏덩어리를 포대기에 싸서 닭바구니에 눕혀놓고 (일했어요). 어떡해요 먹고 살려면 해야죠.”



쉬지 않고 일하는 우리 엄마도 '생활의 달인'?


생각해 보면 저희 엄마도 매일 쉬지않고 일을 하십니다.  방학 때마다 집에 내려가서 엄마가 하시는 가게 일을 돕곤 하는데 가끔 몸이 아프시면 들어가 좀 쉬시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엄마는 아까 쉬었다고 하시면서 밤 늦게까지 가게일을 하십니다.

나중에 억지로라도 등을 떠밀면  한 두어 시간 있다가 다시 나오시는데, 그 날 밤 집에 들어가 보면 집이 몰라볼 정도로 깨끗해져 있어요. 쉬시라고 보내드리면 가셔서 쉬고 나오시는게 아니라 그 동안 가게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집안 일들을 그 때 다 하고 나오시는 겁니다.

 

저는 아무리 쉬라고 해도 일만 하고 몸을 힘들게 만드는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걱정한답시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도  병이야. 왜 이렇게 몸을 혹사시켜. 난 진짜 엄마처럼은 못살아” 라면서요... 딴엔 걱정되고 속상해서 한 얘긴데 돌아서고 나면 내가 도대체 무슨말을 한건가 싶죠.

 

그런데 이번 방송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님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몸 편한거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유일하게  '엄마'라는 이름의 분들은 몸이 편안한게 되려 불편하고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정말 그렇게 변할까요?



세월에 이긴 모든 사람들이 바로 '생활의 달인'

요즘 TV에는 오락프로다 뭐다 같은 시간대의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한 기획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물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좋은 프로그램들도 많구요.

 

생각컨대,  '생활의 달인'은 대한민국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사람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그리고 가장 꾸밈 없이 보여주고 있는 몇 안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엔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살고 있지만, 메스컴을 타는 사람들은 거의 정해져 있죠.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 내가 더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정치인들, 아니면 어느 한 분야에서 눈에 띄게 성공한 전문가들, 그도 아니면 이에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극과 극의 대상자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방송은 시청률 싸움에서 승리를 하게되는 거죠.

 

하지만 이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이웃의 아주머니,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등 세월의 고난 속에서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훈장처럼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진정한 승리자들의 삶을 다뤄주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생활의 달인, 세월의 달인들이죠. 이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인생의 달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방송들이 피터지는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은  화려한 사람들만을 보여주는데 혈안되어 있지만, 사실 세상엔 그들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당신들의 작은 일터에서 조용히 자신과 싸우고 있는 우리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들이죠. 

‘생활의 달인’은 낙오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가족들과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우리 모두가 승리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성공이라는게 별건가요?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내 작은 성공의 증인들인 셈이죠.
오늘 멀리 계신 제 작은 성공의 증인들한테 보고싶어서 전화했다고 낯 간지러운 전화 한통 넣어봐야겠습니다. ^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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