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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선유세 여의도격돌현장, '6개의 콘서트'


  변화무쌍한 대한민국 정치를 가장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곳은, 여의도다.
 
  여의도에서 열린 선거유세대결은 과연 이곳을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으로 부르기에 충분해보였다. MBC에서 2차 대선후보 방송토론이 진행된 이날, MBC 건물 앞에선 토론에 참가하는 주요후보 6명의 유세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4시간여에 걸친 ‘격전’이었다. 각 후보들의 선거운동은 나름의 특징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 현장을 사진ㆍ영상과 함께 담았다.






◇ 정동영 후보 : 침울한 가운데 기적을 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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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적으로 느껴졌던 정동영 후보 측 유세 분위기는 ‘초라함’이었다. 주황색 계열의 티셔츠와 모자로 꾸민 운동원들은, 정동영 후보가 웃고 있는 사진을 든 채 로고송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양 옆의 다른 유세팀(권영길 후보 측, 이회창 후보 측)에 거의 압도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민들의 눈길을 끌 만한 독특한 율동이나 이벤트가 없었던 원인도 있겠다. 허나 기존 여당의 무능함에 실망한, 많은 시민들의 냉소도 커 보였다. 유세차량 맞은편에는 후보가 주먹을 불끈 쥔 사진이 프린트된,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거기 적힌 ‘결국 우리가 이깁니다’라는 문구는, 별 특색 없이 초라한 유세 분위기와 역설적으로 맞물리고 있었다. ‘謹弔(근조) 정치검찰’이라는 검은색 띠를 유세차량에 매달은 것은 오히려 침울함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했다. 토론이 진행돼가자 일반 지지자들이 하나둘씩 합류하기 시작했다. 주로 3-40대, ‘386세대’로 불릴만한 이들이었다. 춤을 따라하고 있던 그들은, ‘기적의 한 방’을 애써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 이명박 후보 : 큰 여유, 자만으로 변할 준비를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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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던 이들의 유세 현장은, 마치 선거에서 이긴 후 벌이는 축제를 연상케 했다. 후보의 높은 지지율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양상이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있었고, 젊은이들도 많았다. 푸른색 점퍼나 목도리, 티셔츠로 무장한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 것은 ‘여유’였다. 나이든 지지자들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단순한 몸동작을 반복했고, 젊은 지지자들은 높이 뛰며 환호했다. 그들에게는 여유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돈도 있었다. 유세차 위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은 방송토론을 생중계했는데, MBC 자체 스크린보다 더 선명한 화면은 다른 후보 지지자들의 눈까지 잡아끌었다. 전략도 좋았다. 선글라스와 가발을 쓴 운동원들이 진풍경을 자아냈으며, ‘사랑의 트위스트’, ‘로꾸꺼’, ‘넌 내게 반했어’ 등을 개사한 로고송들은 귀에 쏙쏙 꽂혔다. 전체적으로 발견되는 큰 여유는 그러나, 이미 자만으로 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서울특별시당 청년위원회’라는 비표를 걸고 있던 건장한 사내들은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시민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감시’했으며, 기자들의 취재를 막기도 했다.




◇ 권영길 후보 : 젊고, 발랄하고, 당당하지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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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다. 이는 권영길 후보 측 유세현장에서 가장 또렷하게 발견되는 점이었다. 붉은색 점퍼를 입고 로고송에 맞춰 춤추는 선거 운동원들은 거의 전부가 20대였다. 젊으니, 그들은 힘차 보였다. 빠른 템포의 로고송에 맞춰 역동적인 율동을 벌이는 운동원들은 흡사 대학축제의 응원단을 연상케 했다. 젊으니, 그들은 또한 열정적이었다. 한 번 춤추고 나면 온 몸이 땀에 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춤을 계속 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원들의 얼굴에서 힘든 기색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환하게 웃으며 자신이 지지하는 당과 후보의 이름을 외치는 그들은 당당해보였다. 진성당원이 많은 민주노동당의 특성이 발견되는 대목이었다. 후보의 얼굴모양으로 피켓을 만들어 흔드는 발랄함과 빤짝이 의상에서 느껴지는 참신함도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이 ‘젊음’은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해보였다. 그러나 젊은 것이 무조건 좋지는 않은 법. 따라하기 쉽지 않은 율동을 지켜보고 있던 몇몇 시민들은 잠시 감탄하다 곧 발길을 돌렸다. 이들의 유세현장은 ‘같이 참여할 장’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미흡해보였다.



◇ 이인제 후보 : 동원된 거 아냐? 무표정한 ‘아줌마 부대’의 힘없는 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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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제 후보 측의 유세현장에서는 ‘늙음’이 느껴졌다. 심각한 점은, 이것이 지지자들의 연령과 상관없는, 전반적인 분위기였다는 데 있다. 운동원들은 대부분 중년의 여성들이었다. 후드티와 야구 모자를 노란색으로 맞춰 착용한 이들 ‘아줌마 부대’는 그러나,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노래에 따라 손바닥을 좌우로 움직이기만 할 뿐이었다. ‘동원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로 그녀들은 유세에 소극적이었다. 일부 열정적인 지지자들이 유세차 위에 올라가 꽹과리와 북을 두드렸다. 이인제 후보가 토론 전후로 2번이나 직접 차량에 올라가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잠깐 오르던 열기는 곧, 지켜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수직낙하하곤 했다. 힘없는 이인제 후보 측의 유세현장에서 그나마 내세울 만한 점이 있다면 운동원들이 준비한 노란 풍선이 아닐까. 눈에 띄는 노란색 풍선을 대거 하늘에 띄움으로, 멀리서 바라보던 시민들의 눈만은 붙잡을 수 있었으니.


◇ 문국현 후보 : 느껴지는 진심, 그러나 아직 채워야할 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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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색. 문국현 후보 측 선거운동원들이 맞춰 입고 유세하던 티셔츠의 바탕색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유세현장을 평가하는 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일단, 정치기반이나 조직이 없이 ‘희망의 정치’를 표방하며 나온 문국현 후보를 선전하는 데 있어 하얀색은 적절했다. 산타 모자를 쓴 채 하얀색 바탕의 귀여운 귀마개를 한 복장도 인상적이었다. 운동원들은 대개 20대였으며 30-40대도 종종 눈에 띄었는데, ‘자발적지지자’들이 많아 보였다. 좋은 점은 여기까지. 하얀색은 깔끔하긴 하지만 무언가 채워 넣어야 할 색이기도 하다. 뚜렷한 전략이 없이 그저 후보에 대한 진심만 가지고 나온 운동원들에게서 ‘발견할 것’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특별한 율동도, 이벤트도, 인상 깊은 구호도 없는 그들의 외침은 그나마 다른 유세팀에 밀려 ‘묻히는’ 양상을 보였다. 다분히 어눌해 보이는 운동원들의 ‘하얀색’ 모습은, 해당 후보의 정치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 이회창 후보 : ‘법과 원칙’ 소리치지만 흡사 시위하는 듯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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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장년층 지지자가 많았던 이회창 후보 측의 유세현장은, 겉으로만 보기엔 마치 ‘시위 현장’ 같았다. 먼저 구호가 난무했다. 이회창 후보 측 유세차량에 몰려있던 이들은 저마다 작은 카드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거기엔 ‘법과 원칙’, '정직한 사람‘, ’대한민국 희망‘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작은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가장 많이 들렸던 로고송은 “법, 법, 깨끗한 창. 법, 법, 이회창!”이었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유세현장에 있던 지지자들에게서 ’일사불란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로를 메운 채 카드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은, 거리에 나온 시위대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열성적인 중ㆍ장년 여성들이 유독 많았던 것도 특징이었다.